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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7 17:44 수정 : 2009.01.27 18:56

박정환(16·사진·충암고1)

최연소 기사 원익배 우승
5살때 입문…13살 입단
“두터운 실리가 나의 기풍”

박정환(16·사진·충암고1) 4단이 화제다. 이름도 거창한 ‘10단전 타이틀’을 따낸(1월18일) 이후다. 바둑계에선 이창호-이세돌에 이은 ‘천재소년’의 등장이라고 반기고 있다. 235명의 한국기원 프로기사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반상 위 행마에는 백전노장의 무공이 있다. 양재호 9단은 “벌써 박정환류의 바둑이 생긴 것 같다”고 칭찬한다.

지난 21일 서울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 3층에서 박정환을 만났다. 대국장에는 이세돌 9단과 쿵제 7단의 삼성화재배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무림 고수들의 전쟁터에서 만난 여드름 소년.

첫 타이틀을 원익배 10단전 우승으로 딴 소감을 먼저 물었다. “기쁘다.” 맨송맨송한 대답이다. 채근하니 “한 수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정답이 돌아온다. 바둑 둘 때 꼭 다문 입술의 옹골참, 날카로운 눈매와는 딴판이다. 16살의 때묻지 않은 소년일 뿐이다.

박정환은 5살 때 바둑을 시작했다. 여전히 9급인 아버지가 명절 때 친척과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졸랐다. 학원에서 배운 지 8개월 만에 전국어린이바둑대회(미취학~초6학년 참가)를 석권했다. 13살 때 입단했으니 일찍이 천재성은 드러났다.

그러나 프로세계의 타이틀을 따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이나 단에 제한을 두지 않는 본격기전에서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이는 이창호 9단(11살 입단 뒤 14살 때 KBS바둑왕 쟁취)이다. 박정환은 두번째 어린 나이(16살)를 기록했다. 입단 2년8개월 만에 정상에 오른 것도 역대 세번째로 빠른 행보다.

박정환 4단 프로필
무엇이 ‘괴력 소년’을 만들었을까? ‘전신’(戰神) 조훈현 9단은 “요즘 신예들이 그렇듯 포석과 형세판단, 국면운용, 전투,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잘한다”고 평가한다. 박정환 본인은 “흐름을 타면서 행마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꼭 실리만을 추구하지 않고, 그렇다고 세력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변증법적 결합인 “두터운 실리”가 박정환의 기풍이다.

바둑판을 맞대면 떨리기보다는 마음이 차분해진다. 반집까지 짚어야 하는 정밀한 싸움에서 최고의 덕목이다. 첫 타이틀을 안긴 원익배 10단전 4강에서는 천하의 이창호가 제물이 됐다. 이창호는 앞선 8강전에서 이세돌을 꺾었다. 세계 최고의 두 기사가 박정환에게 일격을 당한 꼴이다.

박정환은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의 노래를 잘 듣는다. 선배들과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 5시간 바둑공부 때는 깊게 판다. 명선수들의 기보를 복기하면서 연구를 한다. 지난해 대국수는 65국(42승·승률 65%)이다. 각 대국을 거의 틀림없이 복기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는 좀더 많은 세계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한다. 최종 목표는 “세계 일인자”가 되는 것이다.


가능성은 무궁하다. 2006년 11월 <사이버오로>가 프로기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차세대 주목 새내기 1위가 박정환이었다. 이세돌 9단은 최근 중국의 위협에 대해 “원익배에서 우승한 박정환도 있다”고 했다. 두루두루 기대를 받고 있다. 조훈현 9단은 “더 노력해서 꾸준히 성적을 쌓아야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입단 뒤 키가 20cm나 커버린 박정환. 키 못지않게 한국 바둑의 대들보가 되기 위해 선 굵게 연륜을 파고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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