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4 18:35
수정 : 2009.03.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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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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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기사는 누구일까? 바둑 팬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해하고, 누구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기사가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세계대회 성적일 수밖에 없는데, 현존하는 최고의 기사는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중국의 구리 9단이다. 단 한 사람만을 꼽는다면 아쉽게도 세돌이 형이 아닌 구리가 세계 최강자다.
중국의 1인자 구리는 현재 엘지(LG)배, 도요타배, 후지쓰배, 춘란배의 세계대회 4관왕이다. 한국 랭킹 1위 세돌이 형은 삼성화재배와 티브이아시아선수권의 2관왕일 뿐이다. 게다가 티브이아시아선수권은 속기로 진행되는 마이너 기전이다.
구리 바둑의 최고의 강점은 감각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포석에서 앞서 나가고, 모양에 대한 이해가 높아 어느 형태에서나 불필요한 수읽기를 절제한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고의 수를 찾아내곤 한다. “구리의 강점은 빠른 수읽기다. 현대 바둑은 스피드화되고 있는데 구리는 판을 볼 때 불필요한 길을 지워버리고 빨리 본질을 찾을 줄 아는 천재다.”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 위빈 9단의 이야기인데 공감이 간다. 나는 세계대회에서 두 차례 구리와 대면했는데, 1승1패를 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내가 고심을 거듭하며 두는 중반의 어려운 장면에서 구리는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간결하게 처리해 나갔다는 점이다. 대국 후에 동료들과 연구를 해본 결과 구리의 응수는 최선이었다. 또 포석이 매우 강해 조금만 방심하면 초반부터 큰 차로 뒤지게 되곤 한다.
구리는 지난해 후지쓰배에서 이영구 7단, 이세돌 9단, 창하오 9단, 이창호 9단을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모든 대국이 100수를 전후해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났다. 과거 한-중 천원전에서 송태곤 9단, 최철한 9단을 상대로 3년 연속 우승할 때도 초반에 큰 차로 앞서 나갔다. 초반에 앞서 나가고 중반에 간결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구리의 승리 패턴이다.
하지만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도 몸쪽 공엔 약점이 있듯 구리 또한 약점이 없을 리 없다. 우선 중반의 간결한 처리가 강점이면서도 때론 약점이다. 이창호 사범님이 후지쓰배 결승에서 구리에게 진 며칠 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했던 점인데,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파고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만한 수를 구리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응씨배에서 최철한 9단에게 대마가 잡히며 패할 때도 시간이 있었는데도 간단하게 처리하다가 대마가 잡혔다. 구리는 또 계산에서 약간 약점이 있다. 2001년 삼성화재배에서 구리의 대국을 지켜보던 박영훈 9단은 “구리가 계산과 끝내기에서 좀 문제가 있네”라고 말했는데, 2007년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대역전 반집승으로 그 말을 증명했다.
구리와의 대국 때 초반을 잘 버티고 이런 구리의 약점을 파고든다면 한국의 기사들이 구리를 막아내고 예전의 위용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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