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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바둑

‘공붓벌레’ 박영훈 9단

등록 2009-08-24 18:42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최근의 신예 기사들은 누구나 바둑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공부하던 연구생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점점 상향평준화가 돼가는 한국 바둑계에서 태만한 연습은 곧 뒤처짐을 뜻한다.

나는 박영훈 9단처럼 열심히 바둑 공부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도 공붓벌레로 유명했고, 수업할 때 최선을 다해 바둑에 전념했지만 영훈이에게 미치지 못했다. 1년 동안의 프로시합을 총망라한 바둑 연감에는 300국 이상의 기보가 실려 있는데, 영훈이가 그 책을 보기 시작하면 결코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하루에 70국 이상의 기보를 연구하는 날도 있었다.

2000년 한·중·일 신예바둑대항전이 벌어졌을 때 영훈이와 같은 방을 썼다. 우리는 언제나 기보 맞추기 퀴즈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를테면 내가 “흑 우상귀 소목 백 좌하귀 화점 흑 우하귀 화점 백 좌상귀 화점 …” 식으로 문제를 내면 영훈이가 누구의 기보인지 맞추는 식이다. 번갈아가며 문제를 내 빠르면 10수 전후, 늦어도 30수 안에는 정답이 나왔다.

영훈이가 프로에 입단하기 전, 스승 최규병 9단의 바둑연구실에서 공부할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프로 선배들이 연구실에 놀러왔고, 같이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서 집에 가는 길에 선배들은 오락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13살이던 영훈이는 밖에서 사활 책을 꺼내 사활 문제를 풀며 기다렸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흘렀지만 그 자리에 선 채로 계속 사활 문제를 풀었다. 영훈이의 눈에 바둑 말고는 그 무엇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영훈이를 보면 심각한 생각은 전혀 없이 그저 즐거워서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내대회 예선에서 중위권 프로에게 일격을 맞고 어이없이 탈락하는 일이 많은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훈이는 이겨야 할 바둑은 반드시 이기며, 특히 세계대회의 성적이 매우 좋다. 2007년 삼성화재배 세계바둑 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의 1인자 구리 9단을 2-1로 누른 것이나, 후지쓰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에게 승리한 것, 그리고 이세돌 9단과의 지에스(GS)칼텍스배 결승에서 2연패 뒤 3연승으로 우승한 일 등은 바둑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영훈이는 다른 나라 프로기사들에 대한 연구도 상당하다. 허영호 7단은 “중국 기사의 바둑 스타일과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으며, 끈끈한 기풍의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쉽게 이겨가는 점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영훈이는 어떤 기사와 마주해도 결코 자신의 바둑 스타일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 정확한 형세 판단과 끝내기를 바탕으로 국면을 마무리 짓는 것이 빼어나다. 순수한 열정으로 바둑에 전념하는 영훈이가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즐겁게 바둑과 대화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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