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
이세돌(27) 9단의 21연승에 바둑팬들이 흥분하고 있다. 6개월 휴직 공백이 믿기지 않는다. 말이 쉽지 두 자릿수 연승은 프로세계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요즘 바둑은 과거보다 ‘훨씬 세졌기’ 때문에 무패독주는 몇 곱절 힘들다. 비씨(BC)카드배 결승 진출 등 복귀 100일 새 확보한 상금도 최소 1억3000만원이 넘는다. 박정상 9단은 “나도 모르겠다. 기재를 타고났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승부에서 기재만이 전부는 아니다. 과연 어떤 비밀이 있기에?
공백 거치며 마음도 성숙
매니지먼트 관리도 한몫
대진운도 비교적 좋은 편
이세돌 복귀 뒤 확보한 상금·역대 최다연승 베스트 5
■ 성숙해진 마음가짐 지난 12일 후지쓰배가 열린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일본기원 앞. 택시를 타고 일본기원까지 이세돌과 동행한 한국기원 직원은 당황했다. 이세돌이 “내가 좀 거들죠”라며 선뜻 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까칠한’ 모습에 익숙했던 직원이 느낀 충격은 컸다.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다. 인터뷰 요청에도 까탈 한 번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임한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직격탄을 쏘듯 6개월 휴직선언을 통보하며 찬바람 씽씽 날렸던 독불장군이 아니다. 치열한 승부세계에서 고독한 싸움을 밥 먹듯 하면 어딘지 모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소한 갈등과 대립을 피하려는 마음의 여유를 생각하는 것 같다. “본디 바탕이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
■ 매니지먼트와 체력 프로 스포츠에서는 선수를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가 활성화돼 있다. 바둑계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이세돌은 킹스필드라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있다. 일정 관리부터 언론 인터뷰까지 많은 조언을 해준다. 이미지 관리만이 아니다. 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벤트도 있다. 2월 아이티 난민 돕기 ‘이창호-이세돌 특별대국’은 절묘한 기획이었다. 휴직 뒤 100% 컨디션이 아닌 이세돌을 당시 랭킹 1위 이창호와 대결시킨 아이티 대국은 이세돌의 전투욕을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6개월 휴직을 하면서 체력을 비축했고, 4~5일마다 대국을 벌이면서 빠르게 승부감각을 회복했다. 비교적 수월한 각종 국내 예선전 등에서 10승 이상을 거뒀고,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 등 국내 랭킹 2·3위와 대결을 피하는 대진운도 따랐다.
■ 창하오와의 대결이 고비 이세돌은 24일부터 중국의 강자 창하오 9단과의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 5번기 1국을 벌인다. 쿵제 9단, 구리 9단 등을 비씨카드배와 후지쓰배에서 쓰러뜨리는 등 ‘중국 킬러’로 위용을 뽐낸 이세돌 연승의 고빗길이다. 김영삼 8단은 “복귀 뒤 처음 몇 판은 내용이 좋지 않았으나 최근엔 이세돌 바둑 본연의 스타일로 돌아왔다”며 비씨카드배 우승을 점쳤다. 그러나 연승에 매달리기보다는 우승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세돌만 등장하면 30대 이상 남성의 <바둑TV> 시청률은 종종 케이블 텔레비전 1위를 차지한다. 비씨카드배 결승전이 이래저래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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