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18) 9단
후지쓰배 우승 박정환 시대 개막
이창호 ‘16살’ 기록 뒤이어
어린나이로 세계정상 등극
‘미래권력’ 다시한번 각인
“내 마음속 1위는 이세돌”
이창호 ‘16살’ 기록 뒤이어
어린나이로 세계정상 등극
‘미래권력’ 다시한번 각인
“내 마음속 1위는 이세돌”
한국 바둑의 ‘미래권력’ 박정환(18) 9단이 드디어 일을 냈다. 14일 강호의 내로라하는 고수가 모인 24회 후지쓰배 세계대회에서 절정의 감각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18살7개월의 나이가 더 눈부시다. 후지쓰배 최연소 우승(16살6개월)으로 세계대회 제패 첫 테이프를 끊었던 이창호 9단에 이어 두번째로 어린 나이에 세계 챔피언이 됐다.
10대의 수줍음 많은 박정환의 행마에는 엄청난 내공이 있다. 양재호(9단)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박정환은 보통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빠르기로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어렸을 때는 신동이고 지금은 당대를 휘어잡을 천재가 됐다”고 칭찬했다.
우승 기쁨의 여운이 가시기 전인 17일 소감을 물었다. 국내 최연소 입신(9단)이기도 한 박정환은 “고수들에게 한판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 운이 따라주어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며 민숭민숭하게 답했다.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2관왕 때도 그냥 씩 웃는 등 바둑 이외의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결을 재촉해도, “휴식일 없이 연속으로 대국한 게 한살이라도 어린 내게 체력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며 간신히 대꾸했다.
천재는 ‘말하지 않고 보여줄 뿐’이라고 시위하는 듯하다. 사실 박정환은 5살 때부터 날렸다. 학원에서 배운 지 8개월 만에 전국어린이바둑대회를 석권했다. 2006년 14살 때 프로에 데뷔했고, 2009년 십단전과 천원전을 거머쥐면서 타이틀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프로기사의 꿈인 세계대회는 닿을 듯 말 듯한 간극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비씨카드배에서 4강에 오른 것이 세계대회 최고 성적. 결정적인 필살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대회에선 연패의 늪에 빠지는 등 상승세가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이 뽑은 이세돌 이후 차세대 간판 박정환의 잠재력은 휴지기에서 더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이번 대회에서 대만의 일인자 천스위안과 엘지(LG)배 우승자인 중국의 박문요 9단, 일본의 지존 이야마 유타 9단, 중국의 추쥔 9단 등 강자를 연거푸 꺾으며 박정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 열도에서 거머쥔 타이틀이기에 기쁨은 두배로 컸다. 그는 “이야마를 눌렀을 때 ‘우승할 수 있겠구나’라는 감이 왔다. 입단 때 세운 목표를 이뤄 기분이 더 좋다”고 했다. 4강전 이야마와 대국에서 보여준 배짱과 냉철한 형세 판단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김만수 7단은 “포석과 형세 판단, 국면 운용, 전투,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박정환은 “치밀한 계산보다는 수읽기에 자신이 있어 전투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세돌 9단처럼 난타전으로 상대의 혼을 빼놓으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전투형이 박정환의 기풍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한 단계 도약한 박정환은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다. 반상에선 떨리기보다 마음이 차분해진다니 타고난 승부사다. 반집까지 계산하는 수싸움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러나 “우쭐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세돌 9단이 랭킹 1위라고 생각한다. 이세돌 9단을 넘어서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박정환이 14일 후지쓰배 우승 항아리를 들고 수줍게 웃고 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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