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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을 키운 3가지…아버지, 시련, 포기 모르는 열정

등록 2016-03-15 09:29수정 2016-03-15 12:32

이세돌 9단. 연합뉴스
이세돌 9단. 연합뉴스
이세돌은 누구인가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세기의 대국’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첫 승리를 따내자 세계가 흥분하고 있다. 특히 이 9단이 세 차례 거푸 패배를 맛보고도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며 결코 무릎 꿇지 않았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에게 ‘섬 소년’, ‘불패 소년’, ‘쎈돌’이라는 기존 별명 외에 ‘돌 코너’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그가 1200여 대의 컴퓨터와 홀로 맞서 싸우는 모습이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기계 군단 스카이넷과 맞서 싸우는 인류 저항군의 지도자 ‘존 코너’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가족들
“바둑으로 세상 지배하라”며 세돌 이름
아침마다 사활문제 숙제내고 저녁에 점검
형 이상훈 등 남매들 수준급 실력자 키워

올해 만 33살 ‘돌 코너’ 이세돌은 누구인가?

이세돌은 목포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인 전남 신안군 비금면 도고마을에서 태어나 10살 때까지 섬에서 자랐다. 이세돌의 처음 별명이 ‘섬소년’인 까닭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한 비금도(飛禽島)는 이름 그대로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처럼 깨끗한 바다와 아름다운 기암절벽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소금의 섬’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천일염과 특산물인 시금치 섬초가 유명한 곳이다.

그는 5살 무렵 형과 누나와 함께 1998년 암으로 작고한 아버지 이수오에게 바둑을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목포에서 10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홀연히 비금도로 귀향해서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키웠다. 아마 5단인 그는 평소 틈틈이 3남2녀 모두에게 바둑을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세돌의 큰누나 이상희씨가 아마 5단, 이상훈씨가 프로 9단, <월간바둑> 편집장으로 있는 작은누나 이세나씨가 아마 6단, 작은형 이차돌씨가 아마 5단 등 이세돌의 형제들이 모두 수준급의 바둑 실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버지의 남다른 조기교육 덕분이다.

아버지는 특히 막내 이세돌의 바둑 재능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세돌(世乭)’이라는 이름도 “바둑으로 세상을 지배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세돌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내가 서울 아이들에게 뒤처질까 봐 바둑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농사일을 하러 나가셔야 했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나에게 사활문제를 내 주고 저녁에 점검했다. 글자도 깨우치지 못했던 나는 신기하게도 바둑만은 잘 이해했다.”

이세돌은 바둑을 배운 지 2년 만에 아버지와 맞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살 때 서울로 올라와 권갑용 바둑도장(현 권갑용국제바둑학교)에 들어갔다. 이세돌 9단, 박정환 9단, 최철한 9단 등 현재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는 쟁쟁한 바둑 기사들을 길러낸 권갑용(59) 8단은 언젠가 “세돌은 너무 천재적인 아이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담을 수 없는 그릇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련 그리고 고집
입단 뒤 스트레스로 실어증, 목소리 변해
한국기원과 승단대회·저작권 문제 갈등
“좋은 게 좋은 식은 내 나이에 맞지 않아”

이세돌
이세돌
이세돌은 12살인 1995년 7월 2일 입단했다. 조훈현(9살), 이창호(11살)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기록이다. 하지만 입단후 스트레스가 심해 실어증이 찾아왔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기관지가 약해졌다. 다시 목소리를 찾긴 했으나 정상적인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던 형이 입대해 병원도 못 갔다”고 밝힌 적 있다. 그의 목소리가 아이같이 얇은 미성인 까닭이다. 그는 “20살이 될 때까지는 조금 힘들었다. 상처도 많이 받고 이야기도 잘 안 했다”고 한다.

시련은 그를 단련시켰다. 17살이던 2000년 3단으로서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안았다. 그해 그는 32연승을 거둬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하며 ‘불패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더니 마침내 2002년 제15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대회에서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이듬해인 2003년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은 20살 청년 이세돌의 세대교체를 세계 바둑계에 공표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불패의 상징’이었던 세계 최강 ‘이창호 신화’를 처음 깨뜨린 것이다. 그 뒤로도 이세돌은 2007년∼2008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며 ‘쎈돌 전성기’를 치달았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같은 ‘이세돌 어록’도 그때 나왔다.

이세돌은 자유분방하고 강한 개성과 고집 탓에 종종 마찰을 빚곤 한다. 그는 2002년부터 한국기원의 승단대회를 거부했다. 대국료도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한국기원이 2003년에 승단 규칙을 개정했다. 일반기전을 승단대회로 대체하고 주요대회에서 우승하면 승단을 시켜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자 이세돌은 보란듯이 LG배 세계기왕전과 후지쓰배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입신(入神) 경지인 9단에 올랐다. 그가 스무 살의 나이로 입단 8년 만에 9단에 오른 것은 한국기원 최단 기록이다.

또 2009년에는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로 한국기원과 갈등을 빚고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기원과 기사회가 자체사업 기반을 만들기 위해 프로기사 237명들한테 기보저작권을 위임받았는데 그 혼자 사인을 거부한 것이다. “기보저작권의 한 축인 개인 기사들의 권리가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해 5월 프로기사회가 그에게 징계 의사를 비추자 7월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잠적하자 바둑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는 6개월 뒤 복귀하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바둑에서도 쉬운 길이 있고, 어려운 길이 있는데 자꾸 어려운 길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사는 것도 내 나이에 맞는 것 같지는 않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바둑에 대한 열정
1000번 넘는 승리와 세계대회 18번 우승
타고난 천재성 분명 있지만 그 뒤엔 노력
“술자리 끝난 뒤에도 바둑 복기할 정도”

이세돌 바둑기념관
이세돌 바둑기념관
이후 이세돌은 24연승을 거두면서 세계랭킹 1위 자리에 복귀했다. 그는 프로 입단 뒤로 지금까지 1000번이 넘는 승리를 거뒀고, 세계대회에서는 18번이나 우승했다. 그가 천재성을 타고났다고 알려졌지만 그를 아는 프로기사들은 엄청난 노력을 꼽는다. 한 프로기사는 “예전에 이세돌 9단과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이 9단이 복기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귀띔한다.

이세돌은 “창조적으로 바둑을 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도 “바둑은 창작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반 20수 정도의 포석까지는 서로 비슷한 모양이 많이 나오지만 나머지는 만들고 창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최첨단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알파고를 꺾은 비결이다.

정상영 선임기자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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