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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5 19:56 수정 : 2016.03.15 22:04

1~5국 들여다보니

베일에 싸인 알파고에 내리 3패
빠른 적응력 4국에서 약점 공략
5국서 알파고 처음 초읽기 접전
인간의 직관, 판단력, 창의성 증명
‘기계의 실험 대상’ 윤리적 논란

“이렇게 센 줄은 몰랐다. 할 말이 없다.”

지난 10일 알파고와의 2국에서 패배한 이세돌 9단은 기자회견장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반엔 앞섰다고 생각했지만, 중후반 완전히 압도당하며 씁쓸함을 느꼈다. 이세돌만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9일 1국을 보고 “알파고가 두는 수가 정석을 벗어난 것이다. 이상한 수다”라고 말했던 프로기사들도 2국부터는 “이제는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정수라는 개념도 없다. 어쨌든 알파고가 이기지 않느냐?”며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알파고는 최고 수준급 기력을 자랑했다. 1200여개의 중앙처리장치를 가동하고 40대의 컴퓨터와 연결돼 있다. 16만개 기보를 입력해 3000만번의 부분 전투를 학습했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에 딥러닝 기법을 적용해 탐색의 범위와 깊이를 줄여서 효율성을 높였다. 프로기사들은 “전성기 때 이창호 9단의 기보를 많이 참고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반면 이세돌이 갖고 있는 알파고에 대한 정보는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챔피언인 판후이 2단과의 5번기 대국 기보가 전부였다. 이 9단은 1국에서 초반 변칙적 수를 통한 흔들기, 2국에서는 안전행보로 타개를 꾀했고, 3국에서는 강대강으로 맞부닥쳐 3연속 패배했다. 하지만 생과 사가 걸린 싸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회피하는 알파고의 특성을 발견했고, 4국에서 이런 약점을 공략하면서 값진 승리를 거뒀다.

15일 마지막 5국은 부담감을 떨치고 평상으로 돌아온 이세돌이 차분하게 작품을 써내려간 한판이었다.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이 예상을 깨고 컴퓨터가 가장 잘하는 계산으로 맞대응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도전이 너무 보기 좋았다”고 높게 샀다. 79번 수로 좀더 과감하게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겼지만, 이세돌은 “더욱 분발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프로기사들은 “2집반을 진 것 같다”고 했다.

팬들은 감정도 교감도 없는 기계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이세돌 9단의 투혼에 감동을 받았다. 이세돌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4국에서 1승을 거두면서 기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빠른 적응력으로 기계의 약점을 발견해 응징한 이세돌의 승리는 여전히 직관, 판단력, 창의성에서는 인간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세돌 9단도 4국에서 알파고의 ‘떡수’를 연발시켜 승리한 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승리”라고 만족해했다.

알파고 개발팀도 이세돌 효과를 봤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우리 프로그램의 약점이 드러났다. 영국으로 돌아가 기보를 분석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실버 알파고 수석개발자도 “4국에서 알파고가 한계치의 시험에 들었다. 이세돌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의 투혼과 별개로 이번 대국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인공지능 부문에서 아이비엠(IBM)이나 페이스북과 경쟁하는 구글 입장에서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세계적 이벤트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와 달리 유럽과 미국에서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기계와 인간 대표의 대결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전산학을 강의하는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영국 사회에서는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을 하나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실험으로만 봤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의 차원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리적으로도 논란거리를 남겼다. 문 교수는 “과학 연구집단이 소프트웨어 연구 성과를 실험실 내에서 테스트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연구실을 떠나 사회의 장으로 끌어내는 순간 인간 존엄의 문제가 걸리게 된다. 인간이 기계의 성능 실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고 했다. 또 “구글은 전혀 불공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했지만, 알파고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주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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