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리그에서 뛰었던 우완 투수 진우영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바디사이언스 야구트레이닝센터에서 주무기인 스플리터를 잡아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날, 난생처음 울었다. 방출 통보. 내쳐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겪는 시련이라서 조금 더 독하게 마음먹는 계기가 됐다. 동기 부여가 됐고 나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다.” 그때가 2021년 9월이었다. 진우영(22)의 야구 인생 항로는 수정됐다.
진우영은 글로벌선진학교를 거쳐 2019년부터 미국 캔자스시티 로열스 루키리그(계약금 15만달러)에서 뛰었다. 5일 오후 서울 잠실 바디사이언스 야구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그는 “첫 등판이던 밀워키와 경기가 가장 기억이 난다. 선발 다음으로 나가서 4⅔이닝을 던졌는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러운 경기였다”라고 돌아봤다. 2019시즌 최종 성적은 14경기 46이닝 투구 6승2패 평균자책점 2.35.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2㎞까지 찍혔다. 현지에서는 “202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다”라는 핑크빛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2020시즌이 전부 취소됐다. 2021시즌은 정상 개최됐으나 진우영은 그대로 루키리그에 머물러 있었다. 2019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마이너리그 싱글A로 승격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름 이달의 투수상도 수상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상위 리그의 부름은 없었다. 진우영은 “같이 운동하던 애들은 올라가는데 나는 승격이 계속 안 되니까 심적으로 많이 좌절했다. 구속이 남들보다 안 나와서 담금질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시즌 뒤 팀 사정에 의해 방출 통보를 받았다.
국내로 돌아온 뒤 진우영은 곧바로 입대(2021년 12월21일)했다. 다행히 상근 예비역으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퇴근 뒤 개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해 10월부터 캐치볼을 하면서 다시 공을 만졌고, 5월초부터는 휴가를 이용해 독립 구단 파주 챌린저스 소속으로 경기에 뛰기 시작했다. 21개월여만의 등판에서 최고 구속이 시속 146㎞까지 찍혀 희망을 봤다. 진우영은 “진짜 오랜만에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져서 처음에는 살짝 떨리고 설렜다. 첫 타자를 잡은 뒤에 ‘아, 이게 야구 하는 기분이구나’를 다시 느꼈다”고 했다. “마치 집으로 돌아온 느낌”까지 들었다.
진우영이 독립 야구단 파주 챌린저스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 진우영 가족 제공
진우영 스스로 꼽는 무기는 스플리터다. “가장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는” 구질이다. 미국 루키리그 때도 결정구로 스플리터를 써서 타자를 삼진으로 많이 돌려세웠다. 지금은 일단 속구 구속을 끌어올리고 경기 감각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커터 그립도 만지작대고 있다.
그의 또래는 현재 KBO리그에서 프로 5년 차 시즌을 보내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이다. 진우영은 “또래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 자리를 잡고 수많은 팬들 앞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관중 앞에서 공 던지는 게 즐거워보이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의 궁극적 야구 목표는 “내 야구하는 모습을 팬들이 기억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부터 작성해 온 야구 일지에는 그날의 부족했던 점이 채워진다. 훈련이 만족스러운 날에는 ‘실수해도 다른 조언이 오니까 그 상황에 자책 말고 배워 나가자’ 같은 식의 스스로 다독이는 말을 써둔다. “감정 기복이 크지도 않고 쉽게 흔들리는 성격도 아니”라는 그의 MBTI는 INFJ다. INFJ 유형은 인내심이 많고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의 캐치볼이 즐거워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던 야구. 그를 지탱했던 것은 ‘프로’라는 꿈이었다. 아직 군인 신분(20일 소집해제)인 진우영은 휴가를 내서 강원도 횡성군에서 열리는 2023 드림컵 독립야구대회(7일~12일)에 참가한다. 이번 대회에는 파주 챌린저스 등 7개 독립야구팀이 참가하는데 그에게는 8월 트라이아웃, 9월 신인드래프트에 앞서 열리는 예비 쇼케이스가 된다. 진우영은 “몇 이닝을 던지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배우 박은빈이 했던 “뭐 어쩌겠어, 해내야지”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는 그의 새로운 야구 챕터가 막 시작되려 한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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