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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자신을 공격할 줄 알아야 이긴다”

등록 2007-10-08 21:18수정 2007-10-08 21:38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
[한겨레가 만난 사람] 취임 1년만에 SK를 ‘드림팀’ 만든 김성근 감독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생명을 걸고 해야 합니다.”

프로야구 에스케이(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64)은 허투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10월9일 감독 취임 당시 △팬들과 함께 하는 야구 △재미있는 야구 △근성있고 까칠까칠한 야구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내년 우승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꼭 1년이 지난 지금, 팀 모습은 감독이 말한 그대로다. <한겨레>가 취임 1년을 맞은 그를 팀 안방인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그러면 인생이 바뀐다”고 믿는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마음이 변해라, 생각을 바꿔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3할 타자에게도 7할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라고 말한다. “프로페셔널이라면 멈추면 안됩니다. 만족은 후퇴입니다. 만족하지 말고 언제든 불만 속에 사는 것이 진짜 프로입니다.” 그는 “정규리그 126경기를 모두 결승전처럼 싸워 승수를 모았다”고 했다.

구단 사상 한 시즌 최다승(73승) 기록을 다시 썼고, 첫 정규리그 우승도 했다. 관중은 지난해보다 꼭 2배 늘었다.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딱 한마디, “이기니까”였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머릿 속에 있는 걸 비워서 새로운 걸 갖게 됐다.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라졌다”며 그렇게 많이 이길 수 있었던 힘으로 ‘생각의 변화’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2003년 에스케이 인스트럭터를 맡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도 야구는 잘했는데 선수들이 만족감이 많았던 것 같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에스케이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싸울 자세가 돼있지 않았어요.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느끼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래야 한다는 식은 안된다”며 ‘개척자론’을 펼쳤다. 선수들도 감독을 믿고 따라와줬다. “투수를 3명씩 교체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만, 다른 팀은 하라고 해도 못할 겁니다. 우리 선수들은 마음가짐이 돼 있어요. 다른 팀은 흉내내도 성공적으로 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선수들이 하나씩 변해가면서 자연스럽게 팀 전체가 강해졌다.

그는 “감독 한 사람으로 팀이 변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조범현 전 감독이 이미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틀을 만들어놨다. 나는 거기에 마음을 넣은 것뿐”이라며 후배 지도자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팬들을 부르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루한 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 신선함이 바로 스포츠의 맛이다.” 선수들이 팬 요구를 이유없이 거부하면 벌금도 부과했다. 공수교대 때 전력질주 등 ‘스피드업 내규’로 팬들에게 빨라진 야구를 선보였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말만 해도 봄엔 사람들이 웃었어요. 하지만 다른 팀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데 에스케이는 과감하게 해냈죠.”

첫 정규리그 우승에 시즌 최다승
경기마다 선수명단 교체하며 “만족 말라, 변하라” 주문
‘팬과 함께’ 모토로 관중 두배 빠른 경기·이기는 야구가 비결
“난 비뚤어져서 반대로 가지만 가만 놔두면 최고로 한다”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히 김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적잖은 불만이 있다. 그는 “선수명단의 잦은 변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팀은 아니꼬왔을지 모르지만 에스케이만의 색깔이다. 매일 최고의 명단을 만든다”고 했다.

과거에는 구단과 불화도 겪었다. 그가 가장 최근에 감독을 맡았던 것은 2002년 엘지(LG) 트윈스. 엘지는 당시 4위팀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한국시리즈에서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연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그는 이듬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구단 프런트와 마찰이 이유가 됐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 감독은 “나는 비뚤어져서 반대로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만 놔두면 최고로 합니다. 그만큼 프라이드가 있는 거죠. 에스케이는 모든 것을 맡겨놓고 일체 간섭이 없어요. 남자라면 하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김성근 감독은 ‘보통 깐깐하지 않겠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야구에서 관해서만 그렇다. 농담도 곧잘 한다. 가장 잘한 선수를 꼽아달랬더니 “나”라며 웃는다. 그는 야구 외에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다고 했다. “심심하겠다”고 물었더니 “야구해서 이기면 얼마나 재밌는지 아느냐”고 되묻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내 “정대현을 비롯한 구원투수진이 잘해줬다. 우리팀은 모두 스타”라고 선수들을 치켜세운다.

예상대로 그의 하루 스케줄은 단조롭다. 아침 9시 정도에 일어나서 내내 경기기록을 본다. ‘데이터 야구의 마술사’란 별명답게 한번 기록을 살피기 시작하면 3시간 정도 꼼꼼히 들여다 본다고 한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하고 야구장에 나오면 쉴틈이 없다. 특히 만년 중하위권으로 치부되던 에스케이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후에는 각종 인터뷰로 바쁜 시간을 더 잘게 쪼개야 한다.

<한겨레>와 만나는 앞뒤에도 다른 약속이 예정돼 있었다. 앞선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허리를 잡고 일어섰다. 건강은 어떤지 물었다. “1년 내내 이렇게 경기하면 건강할 수가 없어요. 프로는 아픈 데가 있어도 모른 척 가만 있는 게 사는 겁니다.”(웃음)

■ 김성근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출신이다. 59년 동포학생 모국방문 경기 때 국내에 첫선을 보인 뒤 60년 동아대에 스카우트됐고 2년 뒤 기업은행에 들어가 7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62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며 김응룡·백인천과 함께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듬해 대통령배 가을철리그연맹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최고 기량을 과시했다. 어깨 부상으로 68년 야수로 전환했지만 1년밖에 더 뛰지 못했다. 27살 나이에 마산상고 감독을 맡은 이후 야구부 창설 9년밖에 안 된 충암고를 전국대회 우승(77년)으로 이끌었고, 81년 신일고를 맡은 지 3년 만에 우승시켰다. 대표팀 코치 자격으로 제11회 아시아선수권(75년)에서 우승해 체육훈장(기린장)을 받았다. 84년 당시 OB베어스에서 프로야구 감독을 시작한 뒤 태평양·삼성·쌍방울·LG 등 5개 프로팀 감독을 맡았다. 2006년 10월 SK와이번스 감독에 취임해 첫해 정규리그(2007년) 우승을 달성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SK와이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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