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상고 감독 시절 9회까지 시합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5회나, 7회쯤 되면 아이들이 도망가고, 그걸 찾으러 다녀야하고….”
누군들 사연이 없으랴만, 김성근 에스케이(SK) 감독의 옛날 일을 엮으면 ‘대하 소설’이 한편감이다. 통산 ‘1000승’이란 높은 산에 오르는 사이, 그만큼 깊은 골을 많이 지나왔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고국 방문 경기에서 눈에 띄어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대표팀 좌완에이스로 김응룡·백인천 등과 함께 1962년 아시아선수권 준우승을 이끌었다. 대통령배 가을철리그연맹전에서 노히트노런도 기록했다. 2년 뒤 영구귀국을 택했다.
27살 때 마산상고 감독 자리가 주어졌다. “야구 못하면 어떻게 밥을 먹고 살까”라는 걱정을 하다, 살 길은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산상고 감독을 그만둘 때쯤 서울 갈현동에 장만해뒀던 집 한채가 날아갔다. 야구에 ‘미쳐’ 손익계산을 못 했던 거다. 1984년 행운처럼 프로팀 오비(OB) 베어스 감독이 돼 그해 4월7일 첫 승을 거뒀다. 그 뒤 5개 구단을 거쳤는데, 단 한번도 떠난 팀에 돌아가지 못했다. 성적이 좋아도 그랬다. 1999년 쌍방울에서, 2002년엔 엘지(LG)에서는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는 엘지를 떠나면서 구단 고위층을 향해 “야구는 선수와 감독이 하는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4년 만에 프로야구로 돌아온 그는 ‘비주류’ 선수들을 모아 에스케이를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그는 “화려한 무대 뒤에 엄청난 고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게 없으면 금세 모래알처럼 사라진다”고 했다.
이제 그는 스스로 “1000승 달성해도, 여섯번 해임된 감독 아니냐”며 웃고 만다. “엘지에 있을 때 이런 팀을 만들고 싶었다”는 아쉬움들도 더는 숨기지 않는다. 이제 66살. 한국야구에선 ‘은퇴’라는 말이 나올 만한 때다. 올해가 에스케이와의 2년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어서 더 그렇다. 그에겐 여전히 꿈이 있다.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후배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에 담아둔 채 못다한 이야기…. “언젠가, 야구를 그만두고 유니폼을 벗을 때 해줄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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