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렬씨가 1m87의 큰 키를 이용해, 시속 100㎞대의 변화구와 120㎞대의 직구를 섞어 던지며 타자를 요리하고 있다. 안씨는 전국클럽야구대회 결선대회 4경기를 치르며 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첫 입문땐 ‘선수출신’ 오인받아
10년간 우수투수상만 15차례
선천적 강한 어깨 ‘난공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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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수술)를 받으려다 말았어요.”
‘토미 존 서저리라니’,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주로 받는 수술이다. 많은 운동으로 인해 팔꿈치 뼈가 떨어져 나온 것을 빼는 수술.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중인 임창용(야쿠르트 스왈로스)도, 미프로야구에서 뛰는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도 이 수술을 받았다.
사회인 야구팀 서울 WWE(We will enjoy)의 안홍렬(36)씨도 같은 경우라고 했다. “정형외과에 가니 의사가 ‘정민태 팔하고 똑같네’라고 하시더라구요. 지난 5월에 받으려다가 미뤘는데, 그날 저 대신 엘지의 이형종 선수가 수술대에 올랐죠.”
프로선수처럼 부상을 당한 안씨는 사회인 야구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선수다. 정규 야구 교육은 하나도 받지 않았지만, 1999년 데뷔 첫 경기에서 삼진 12개를 잡아내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의 이선이 기록부장은 “안 선수를 처음 봤을때 정말 놀랬다”며 “시속 140㎞짜리 직구를 아마추어가 던지니, 한 2년 동안은 안 선수가 ‘선수출신’ 아니냐고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웃었다. 주말에 취미삼아 야구하는 사람들에게 시속 140㎞짜리 직구를 던지니, 마치 에스케이(SK)의 김광현이 155㎞대의 직구를 던져 윽박지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캐치볼만 하다 재미삼아 야구를 시작한 안 씨는 10년 동안 소속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상도 15번 정도 받았다.
안홍렬(왼쪽부터 앞줄 다섯번째)씨 등 서울 대표로 출전한 WWE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전국클럽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WWE야구팀 제공
서울 WWE 야구팀의 안홍렬씨가 지난달 2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전국클럽대회 8강 인천 제브라전에 선발등판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안씨는 4회말 5점을 내주는 등 중간에 흔들렸지만 6⅔회 동안 8안타 8실점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하지만 ‘고수’는 ‘고수’인데,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였다. 올해 KBO총재배 전국클럽야구대회 결선대회에 출전한 안홍렬씨는 중요한 경기에서 많이 흔들렸다. 지난달 22일 8강전에는 선발로 등판해 9-1로 앞서다, 9-8까지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김정섭 서울 WWE 감독은 “올해 가장 안좋은 투구였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달 30일 결승전에서도 8-3으로 앞선 3회말에 등판해 13-11로 승리할 때까지 진땀을 흘렸다. 구석구석 찌르는 변화구가 흔들리면서 승부구로 쓰던 시속 120㎞ 후반대의 직구가 난타당했다. 안씨는 주자를 모두 들여보낸 뒤에야 삼진과 내야땅볼로 처리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우승이 결정되자 두 손을 번쩍 들었던 안씨는 경기 뒤 “취재도 있고 중요한 경기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구요. 못 던져서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우승하니까 다행이네요”라고 머쓱하게 웃었다.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팀들이 지역 대회를 거쳐 선발된 이번 결선대회에서 4승을 거둔 안씨는 최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사회인야구라고 해서 얕잡아 볼 것은 아니다. 안씨가 뛰는 2부리그만 하더라도 규정상 한 팀에 선수출신 3명이 경기를 뛸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봉황대기 등 전국대회에 등록할 정도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선수나,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40살 이상의 선수 등 ‘선수출신’까지 뛰니 리그 수준은 만만치 않다. 프로야구 태평양에서 한때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던 최창호도 선수로 뛸 정도다.
그럼 안씨는 한다하는 고수도 많은 사회인야구를 어떻게 평정했을까? 안씨는 “체계적인 교육없이 빠른 볼을 던질 수 있는 데는 선천적으로 좋은 어깨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력은 필수였다.
일본계 화학회사에서 영업부문 과장으로 일하는 그는 틈 날때 마다 야구를 했다. 1년 중 명절과 휴가를 제외하고 주말에는 모두 훈련을 했다. 부인 하연정씨도 주말에 낮잠 자느니 운동하는 게 낫다고 이해해줬다고 한다. 평소에도 주로 계단을 이용하며 하체훈련을 보충했고, 집에 밴드를 걸어놓고 투구연습을 하며 어깨 힘을 길렀다. 텔레비전 야구 중계를 보며 좋아하는 선수인 정민철(한화)의 투구 폼을 따라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번 리그를 앞두고도 그는 “술도 끊고, 출장을 다닐 때는 차안에서도 기구를 이용해 팔운동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10년 동안 장수하며 선수로 활약한 것도 이렇게 프로선수 뺨치게 몸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어깨가 좋았다는데, 야구를 할 생각은 없었을까? 안씨는 “체육교수로 있던 아버지가 엘리트체육의 병폐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운동선수로 뛰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사회인야구에서 잘 할 때는 프로선수를 했으면 잘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청주고를 나온 안씨는 체력검정으로 공던지기를 하면, 공이 학교 울타리 바깥으로 나갈 정도로 당시 야구부 선수보다 더 멀리 던졌다고 한다.
우승을 차지한 뒤 벌개진 얼굴로 안씨는 “나이가 들어 예전 같이 140㎞대의 직구는 나오지 않지만, 야구는 9명이 하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도와줘서 잘 할 수 있었다. 돌이 지난 아이가 커서 나중에 캐치볼을 함께 하는게 꿈”이라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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