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1일 기아타이거즈로 새롭게 출발하는 해태야구단이 2001년 7월29일 밤 광주 무등 경기장에서 열린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뒤 고별식을 열고 기립 박수와 함께 ‘해태‘를 연호하는 관중들의 함성에 답례하고 있다. 2001.7.29 / 광주매일 제공
기아 오늘 고별전… ‘기억할게, 우리의 무등’ 문구 유니폼 경기
‘기억할게! 우리의 무등!’
한국시리즈 10승을 이루며 광주 시민을 웃기고 울렸던 무등야구장이 전설 속으로 사라진다.
무등야구장은 4일 열리는 올해 프로야구 시즌 마지막 경기인 기아(KIA)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대결을 끝으로 타이거즈 홈구장의 역사를 마감한다. 내년 시즌부터 기아는 인근에 새로 지은 최신식의 2만7000석 짜리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로 안방을 옮긴다.
기아, 내년부터 2만7000석 짜리 최신식 구장으로 옮겨
기아 선수들은 이날 고별전에서 ‘기억할게, 우리의 무등’이라는 문구를 유니폼에 붙이고 경기를 진행한다. 구단 쪽도 32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해준 시민한테 감사하는 뜻으로 구장 개방과 선수 사인회 등 행사를 연다.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에 위치한 무등야구장은 1965년 전국체전을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 첫 이름은 광주공설운동장이었으며 1977년 광주에서 열린 58회 전국체전 때부터 무등야구장이란 이름이 사용됐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해태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돼왔다.
김봉연,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그리고 ‘목포의 눈물’
해태는 약체로 출발했지만 이듬해부터 폭발적인 타선과 화끈한 공격 야구를 선보이며 무등경기장으로 인파를 모았다. 김봉연,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등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대스타들이 배출됐다. 선동열 기아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3년에 처음으로 무등경기장에서 등판했으니 40년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선수로 시작해서 지도자로 마지막을 함께 하니 내게도 뜻깊은 추억이 있는 구장”이라고 감회를 전했다.
무등야구장은 억압당하고 말못하던 시절에 광주시민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광주시민들은 80년 5월 총칼로 권력을 찬탈했던 신군부에 맞서 바로 이곳에서 ‘목포의 눈물’을 합창하며 설움을 달랬다. 서슬퍼런 군부의 감시에도 시민 수천명이 모여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1980년 5월20일에는 5·18 만행을 규탄하는 택시들의 경적시위 집결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아팬 김대준(42)씨는 “80년대 후반 야구장에서 목청껏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나면 저절로 힘이 났다. 5월이면 야구장에 모였다가 경기가 끝나면 금남로로 몰려가곤 했다. 이런 추억이 공간이 사라진다니 아쉽다”고 회고했다. 김문곤(51)씨는 “태정태세문단세~는 몰라도 김봉연 김성한 이종범은 안다. 다른 곳 야구장과는 다르다”고 했다.
1987년은 광주시민에게 특별한 해였다. ‘6월 항쟁’이 일어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가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해태와 기아를 통틀어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타이거즈가 안방에서 광주 팬들과 우승의 순간을 함께 한 것은 1987년이 유일하다. 1991년은 대전(상대 빙그레)에서, 나머지 8번은 모두 잠실에서 우승을 결정했다.
2000년대엔 ‘대표적으로 낙후된 구장’이라는 오명도
2000년대 무등야구장은 대구 구장과 함께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낙후된 구장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2003년 7월20일 에스케이(SK) 전에서 그라운드에 물방개가 등장하면서 ‘생태공원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2008년, 2009년에는 광주 팬들이 구장 신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보내려니 애틋하다. 고별전에서 시구자로 나서는 타이거즈의 오랜 팬 박질선(77) 씨는 “야구장이 유니버시아드대회까지는 그대로 남는다고 하는데, 이후로도 야구장을 허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단과 시가 무등야구장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있다면 팬들과 함께 한 야구장을 허물지 말고 이후 계획에 대해 좀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만2500석인 무등야구장은 앞으로 학생들과 사회인, 동호인 등 아마추어를 위한 경기장으로 쓰이게 된다. 내년 대규모 보수를 거쳐 2015년 여름 유니버시아드 때는 야구 보조경기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광주/안관옥, 허승 기자 okahn@hani.co.kr
광주 무등야구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