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미국인 구단주 토드 볼리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을 유럽 축구계가 냉담한 조소로 되받았다. 축구라는 문화 자본을 두고 미국과 유럽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발단은 뉴욕에서 시작됐다. 볼리는 지난 14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SALT 콘퍼런스에 참석해 “프리미어리그가 미국 프로스포츠로부터 배웠으면 한다”라며 미국식 올스타전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
왜 올스타전을 하지 않나”라고 물으며 “올해 우리는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전을 통해 이틀 동안 2억달러를 벌었다”고 했다. 아울러 “다른 구단주들도
이 아이디어를 좋아한다”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미국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소유권을 일부 가지고 있는 볼리는 올해 5월 컨소시엄을 꾸려 첼시의 구단주가 됐다. 아스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등 프리미어리그 클럽 상당수가
미국 자본을 뒷배로 두고 있는 만큼 볼리의 제안은 공상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 자리서 잉글랜드 북부와 남부가 한 팀을 이뤄 올스타전을 치르자는 구체적인 구상도 나왔다.
그러나 유럽의 축구인들은 냉담하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15일 아약스전 직후 기자회견 자리서 “(올스타전을 할 수 있는) 날짜를 찾으면 연락 달라”며 “미국의 스포츠에서는
중간에 4달씩 쉰다. 이때 잠깐 경기(올스타전)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일 수 있다. 축구는 완전 다르다”라고 했다. 중간에 올스타 휴식기를 갖는 미국과 달리 각종 컵대회 등으로 전 시즌이 빡빡한 유럽 축구에서는 여유를 낼 수 없다는 반박이다.
아울러 클롭 감독은 “할 말이 없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라도 데려와 축구를 하게 할 생각인가”라고 했다. 글로브트로터스는 미국의 묘기 농구팀이다. 또한 “맨유, 리버풀, 에버턴(북부)이 한 팀에서 뛰고, 아스널, 토트넘(남부)이 같이 뛴다? (볼리가) 정말 그렇게 말했나? 대단하다”라며 영국의 축구팬들이 과연 라이벌팀과 같은 팀을 이뤄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지 모르겠다는 투의 의구심을 드러냈다.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게리 리네커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이봐 토드, 축구에는
이미 올스타전이 있다네. 국가대표 A매치라고 하지”라고 썼다. <시비시(CBC) 스포츠> 방송에 출연한 리버풀 출신 방송인 제이미 캐러거는 “굉장히 오만한 발언”이라며 “그(볼리)는 아직 첼시에서 훌륭한 구단주로 자신을 입증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동석한 티에리 앙리 역시 “
여긴 유럽이다. 그런 식으로 일이 굴러가지 않는다”라고 동조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AP 연합뉴스
<비비시> 올스타 뽑기 페이지에서 기자가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북부 올스타.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비비시> 올스타 뽑기 페이지에서 기자가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남부 올스타.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미국식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이식하는 일이 유럽의 전통을 해친다는 의견이 팽배하지만 은근한 기대감도 포착된다. <이에스피엔>(ESPN), <비비시>(BBC) 등은 볼리의 발언 이후
전문가가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올스타 명단이나
독자가 직접 올스타팀을 뽑도록 하는 컨텐츠를 게시했다. 한편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로렌조 카시니 리그 회장이 “
올스타전 아이디어는 주목할만하다”며 수용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