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골이 터졌다. 월드컵 출전 사상 한국의 첫 선제골이었다. 벅찬 감격 때문일까. 2분여 뒤 깊은 백태클로 인한 레드카드가 나왔다. 선제골과 백태클. 1998년 6월13일(현지시각) 프랑스 리옹 제를랑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E조 예선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는 이 두 단어로 압축된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사진)의 발끝에서 모든 일이 벌어졌다. 그는 전반 27분 선제 프리킥골을 넣었으나 2분여 뒤 멕시코의 라미레스에게 백태클을 했다가 퇴장당했다.
하석주 전남 드래건즈 감독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첫 골을 성공시키고 흥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선제골이 터지면서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너무 넘쳤던 것 같다”고 했다. 프랑스월드컵이 열리기 직전까지 한국 대표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지역 예선전 6경기 만에 월드컵 출전을 확정지었고, 선수들의 컨디션도 꽤 좋았다.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라고 해봐야 일본 제이(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뿐이었다. 국제 경기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멕시코와는 신체적인 조건이 비슷해서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첫 승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고, 의욕 또한 앞섰다. 그런데 첫 골이 터졌으니….”
좋았던 경기 흐름이 ‘레드카드’라는 돌발 변수에 의해 깨지면서 한국은 멕시코에 1-3으로 졌다. 분위기는 네덜란드전까지 이어져 0-5, 대참패가 나왔다. 차범근 감독은 중도 경질됐고, 팀 분위기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나마 “머리가 깨지고, 다리에 경련이 왔는데도 온몸이 부서져라 뛴 덕에” 마지막 벨기에전은 1-1로 비겼다.
하석주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 조별 예선 첫 경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첫 경기를 잘못하면 두번째 경기마저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 감독은 “첫 경기의 중요성 때문에 긴장할 수도 있고, 이 때문에 경고 누적이나 일반 퇴장의 변수가 나올 수도 있다.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아서 부담은 별로 없을 듯한데 돌발 변수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시즌이 막 끝난 상황에서 월드컵에 참가하다 보니 컨디션이 정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빠른 회복으로 90% 이상 체력을 끌어올린 상태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장마다 잔디 사정이 다를 수 있고 브라질 현지 특성상 날씨 변화도 다양하니까 이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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