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허수봉이 지난 10일 오전 충남 천안시 직산읍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9년 3월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의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 4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까지 단 1승 앞둔 현대캐피탈은 경기 직전 핵심 선수 크리스티안 하다르를 부상으로 잃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대체 선수로 당시 20살에 불과했던 신예 허수봉(23)을 투입했다. 허수봉은 지난 10일 <한겨레>와 충남 천안시 직산읍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나 “그날 경기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당시 허수봉은 경기장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선발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요한 경기라서 긴장도 됐다”지만, “자신감 있게 때리라”는 팬들의 성원에 그는 코트에서 훨훨 날았다. 그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경기가 잘됐다”고 했다. 허수봉은 이날 경기 최다 득점(20점)을 기록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챔프전에 오른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을 꺾고 통산 4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팬들은 그에게 “허다르”라는 별명을 붙였고, 언론은 그를 “히든카드”라고 불렀다.
현대캐피탈 허수봉이 2019년 3월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시즌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우리카드와 2차전에서 팀 동료 문성민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KOVO 제공
3년이 지난 지금, 더는 그에게 외국인 선수 이름을 딴 별명은 필요 없다. 히든카드라는 평가도 어울리지 않는다. 명실상부 에이스인 허수봉을 빼고는 리그 판세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허수봉은 올 시즌 남자부 웰뱅톱랭킹 5위, 득점 부문 7위(383점)에 올라 있다. 국내 선수로선 양 부문 모두 1위다. 가장 인상 깊었다는 걸개 문구처럼, “과일은 한라봉, 배구는 허수봉”이 남자부의 공식이 되고 있다.
미래도 창창하다. 프로데뷔 6년 차인 그는 아직 23살이다. 허수봉은 2016∼2017시즌 고졸 출신으로 드래프트에 나와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았고, 곧바로 트레이드로 현대캐피탈에 이적해 꾸준히 기회를 얻었다. 상무 배구단(2019∼2020년)에서 뛰며 이미 군 복무도 마쳤다. 허수봉은 “또래 친구들이 대학을 거친 뒤 (프로에) 오면 저는 이미 3시즌을 뛰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나 느끼는 게 다른 것 같다”고 했다.
현대캐피탈은 허수봉에게 안성맞춤인 둥지다. 특히 최태웅 감독과 롤모델 문성민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다. 허수봉은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며 “폼 하나하나부터 기본기, 자세까지 교정해주셨다. 경기 출전 기회도 제가 성장하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또 “(문)성민이형은 정말 최고의 선수였다. 같이 운동하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다. 공격적인 부분에서 스윙이 간결하고, 서브할 때 토스가 거의 일정하다”고 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과 허수봉. KOVO 제공
승승장구하는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남자배구 인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팬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프로선수다. 아마 모든 선수가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V리그 남자부가 순위 싸움도 치열하고 실력도 평준화된 것 같아서 정말 재밌다”면서도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못 내니까 (여자배구 인기와) 좀 벌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허수봉은 오는 9월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 때 대표팀에 승선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본디 자리인 레프트는 물론 상무 시절 뛰었던 라이트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
호랑이띠인 그는 흑호해를 맞아 “올해는 정말 너의 해가 될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웃으며 “호랑이처럼 무섭고 카리스마 있기보다는 살가운 성격”이라고 했다. 또 “소극적인 편이라서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누가 옆에서 말하면 가끔 한 번씩 끼는 그런 타입”이라고도 했다. “비싼 차보다는 꾸준히 저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도 했다.
현대캐피탈 허수봉이 지난 10일 오전 충남 천안시 직산읍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러나 코트 위 허수봉은 맹렬한 공격을 즐기는 승부사이기도 하다. 그는 “듀스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따내는 승리가 배구의 최대 재미”라고 했다. 취미로 즐기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할 때도, 그는 “지고 있다가도 단 한 번의 ‘그랩’(상대를 붙잡아 끌어오는 기술)으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블리츠크랭크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허수봉은 <쇼미더머니>에 나온 ‘리무진’(비오)을 즐겨 듣는다고 한다. 어릴 적 리무진을 보며 성공을 꿈꿨고, 이제는 그 바람을 이뤘다는 내용의 노래다. 다만 그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건 이미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여전히 꿈을 꾸는 소년에 가까웠다. 허수봉의 배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천안/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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