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기’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의 상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경기 시작 전 선수와 심판, 감독 모두가 5∼10초간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3시즌째 이러한 의례를 이어오고 있다. 2020년 여름, 미국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를 외치며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도 거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무릎 꿇기를 처음 시작한 장본인,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35)은 5년째 실직 신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한국시각) 소속팀 없이 홀로 연습을 시작한
캐퍼닉의 근황을 전하며 “그가 마지막 미국프로풋볼 경기를 치른 뒤 미국 대통령 임기가 한 번 지나갔고, 톰 브래디는 은퇴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썼다. 캐퍼닉은 2017년 초 팀에서 방출된 이후 지난 5년간 소속팀을 구하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프리시즌 경기에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기립을 거부했다. 그는 “나는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국가의 국기에 자부심을 표하기 위해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풋볼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캐퍼닉의 퍼포먼스는 미국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그렸다. 리그 동료들을 비롯해 미국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그에게 동조했고
여론은 둘로 갈렸다. 캐퍼닉은 2017년 <타임> 지
올해의 인물 10인에 선정됐고, 무하마드 알리상과
엠네스티 양심대사상을 받으며 민권운동가로 자리 잡았다.
콜린 캐퍼닉(가운데)이 2016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레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캘리포니아/EPA 연합뉴스
풋볼보다 중요했던 신념은 결국 그에게서 풋볼을 앗아갔다. 2017년 자유계약(FA) 선수가 된 캐퍼닉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없었다. 그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추정이 팽배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연일 트위터로 “위대한 미국 국기를 위해 일어서지 않는 선수는 해고니까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캐퍼닉은 프로풋볼 구단들이 공모해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9년 비밀유지 서명을 하고 합의했다.
이후 캐퍼닉은 꾸준히 프로 복귀를 타진했지만 바뀐 건 없다. 2019년 11월 미국프로풋볼 사무국과 함께 계획한 공개 훈련은 공개 조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직전에 파투났다. 양쪽은 상호 불신만 재확인했다.
올해 3월 캐퍼닉은 현역 리시버들과 함께 다시 전국 순회 훈련을 재개했다. 그는 타일러 로켓, 아론 풀러(이상 시애틀 시호크스) 등과 훈련한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리며 ‘나 아직 건재해요’를 외치고 있다. 그의 훈련을 도운 트레이너
데이비드 로빈슨은 “당장 미국프로풋볼 쿼터백 두 번째 후보 정도는 쉽게 차지할 수 있다”고 평했다. 캐퍼닉은 25일 트위터에
“다음은 LA”라고 적으며 다음 훈련을 예고했다.
토트넘의 손흥민(오른쪽)이 지난해 2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과 경기 전 무릎을 꿇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르브론 제임스(왼쪽에서 둘째)를 비롯한 엘에이 레이커스 선수들이 2020년 8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 국가가 연주 되는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 플로리다/EPA 연합뉴스
지난해 4월 경찰의 총격에 숨진 흑인 청년 단테 라이트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시민들이 시위 중 무릎을 꿇고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