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김연경(흥국생명)이 쪼르르 황현주 감독에게 달려갔다.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코트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지르면서 경기장 밖으로 연결되는 문으로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가지마세요.” 다른 선수들도 황 감독을 말렸다.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밖으로 나갔고 선수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코트에서 주심에게 계속 항의를 했다. 황 감독은 5분 정도 지난 후에야 배구연맹(KOVO)의 설득으로 코트로 돌아왔다.
3월31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06~2007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현대건설의 챔프 4차전 때 벌어진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심판의 경기운영 미숙. 이점세 주심은 22-21로 현대건설이 앞선 3세트, 현대건설 정대영의 2점 후위공격 때 처음에는 4심 합의 끝에 아웃이라고 선언했다가, 이후에 현대건설 선수들의 항의와 전광판으로 계속 재생된 경기장면을 보고 정말순 부심과 다시 합의해 흥국생명 이영주의 팔목을 맞고 나갔다고 판정을 번복했다.
이에 발끈한 황현주 감독은 “4심 합의를 번복했다”는 이유로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급기야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사태까지 연출했다. 항의강도만 셌을 뿐, 남자부 대한항공-현대개피탈의 플레이오프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황 감독은 4세트 24-24에서 김연경의 2점 후위공격을 놓고도 주심이 1점으로만 인정하자 또다시 항의했고, 이에 홍성진 현대건설 감독은 “경기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없다”고 맞항의를 해 이 때도 경기는 15분 정도 중단됐다.
이날 총 경기시간은 판정시비로 지연된 40여분을 포함해 2시간33분. 프로배구 최장 경기시간이었다. 체육관에 모인 3500명의 팬들 뿐만 아니라 공중파인 <한국방송>의 생중계를 통해 배구를 지켜본 수많은 잠재적 배구팬들까지 2시간33분 동안 ‘선수 주연’이 아닌 ‘심판 제작, 감독 주연’의 짜증나고 긴 영화 한편을 지켜봐야 했다. 심판들의 오락가락한 운영도 문제였지만, 팬들이야 보든 말든 윗옷까지 벗으며 선수들의 만류에도 경기장을 떠나는 감독의 추태는 볼썽사나움의 극치였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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