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로는…2008베이징올림픽이 계속된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73kg급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왕기춘이 눈물을 참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전라도 정읍 시골에서 “원시인처럼 맨발로 뛰어다녔다”던 개구쟁이었지만, 밖에 나가 얻어맞고 오거나 돈을 뺏기고 돌아오자 엄마는 아들을 유도장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유도를 시켰지만, 중학교 시절 꼬박꼬박 유도회비를 내줄 형편까진 되지 못했다. 엄마는 아예 선수단 숙소에서 ‘밥짓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 아들이 2006년 처음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국가대표였으면 좋았겠지만,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였다. 이원희의 기술에 넘어가주고, 이원희의 기술을 버텨주는 보조선수였다. 그러나 이 ‘겁없는 아이’는 이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원희를 눌러, 진짜 국가대표가 돼 선수촌으로 향했다. ‘폼생폼사’를 좋아하는 아이는 “나도 국가대표인데”라는 생각으로 그 좋아했다던 ‘미니카’도 싹 치워버렸다. 지난해 9월 국내유도 사상 최연소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아이가 “지구 안에서 1위가 된 다는 것, 얼마나 신나는 일이예요”라는 각오를 밝히며 베이징에 왔다.
8강이 끝난 뒤 아버지 왕태연씨가 경기장 뒤편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물었다. 1·2회전에서 모두 한판승으로 이긴 아들이 8강에선 정규 5분을 넘겨 연장 1분27초 만에 절반을 따내 힘겹게 이긴 뒤였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은데도 식당일을 나가는 어머니는 같이 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기춘이가 (경기를 하다가) 배쪽의 통증을 느낀 것 같다”며 손으로 자신의 왼쪽 갈비뼈쪽을 만졌다. 아버지의 직감은 틀린 게 아니었다. 8강이 끝난 뒤 왕기춘은 극심한통증을 참으며 간신히 라커룸으로 향했다.
기춘이의 은메달, “힘내라 왕기춘”
[%%TAGSTORY1%%]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유도 73㎏급 결승전. 4강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를 유효승(지도 2개)으로 누른 왕기춘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붙은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를 또 만났다. 그 때 왕기춘은 연장에서 ‘다리잡아메치기’ 기술로 효과를 따내 국제무대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왕기춘이 거꾸로 경기 시작한 지 13 초 만에 다리잡아메치기 한판패를 당했다. 왕기춘은 매트에서 빠져나와 인터뷰 구역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 죄송하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안병근 감독은 "8강에서 늑골 골절이 된 것 같다. 어긋난 부분을 맞추고 테이핑을 하고 출전했다.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방송 해설위원으로 경기장을 찾은 이원희는 왕기춘을 만나 “잘했어! 기춘아”하며 꼬옥 안아줬다. 이원희는 “나이가 어리니 기춘이가 고개를 떨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민호가 29살에 금메달을 땄는데, 2012년 런던올림픽이면 왕기춘이 24살 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수서경찰서 개포지구대 경장인 현역 경찰 강신영(31)은 이날 여자 57㎏급 1회전에서 유효패를 당했다.
베이징/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