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들이 두루 구경하면 더 좋죠” “집에서 썩여 뭐 합니까. 야구팬들이 두루 보고 구경하면 그게 더 좋지요.” 야구 원로 김양중(75)씨는 기증할 물건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가 야구 도입 100돌을 맞아 연말쯤 차리려고 하는 야구박물관에 선뜻 ‘가보’같은 20여점의 야구자료를 기증할 예정이다. 1949년 청룡기 야구대회 우승 상품으로 받은 은수저, 당시 이 대회 주최 쪽이던 <자유신문사>의 신익희 사장에게서 상장을 받는 사진, 탄피로 만들어 이젠 시커멓게 돼버린 우승컵, 50년대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메달 등이 기증품에 들어있다. 이제는 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힘든 한국 야구사의 흔적들이다. “박물관 준비 작업을 좀더 일찍 시작해야 했어요. 제 또래 선수들은 거의 다 돌아가시고 없어요. 사진은 몇 장 남아있을지 몰라도 당시 광목으로 만든 유니폼, 스파이크 등 유물은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됐지요. 게다가 그때는 못살던 때라서 우승 상품이 광목 1필, 고무신, 은수저 같은 것이었어요. 이런 걸 이젠 어떻게 구해요? 나만 해도 이사하면서 버린 우승 트로피가 한 리어카는 넘을 거에요.” 김씨는 만시지탄했다. 김씨는 광주서중(지금 광주일고)을 나온 왼손투수로 49년 호남에 처음 고교전국대회 우승기를 가져갔고, 이후 농협과 육군 야구단 선수를 거쳐 기업은행 창단 감독을 지낸 호남 야구의 대부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광주 연고구단 감독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몇 차례 전라·충정지역을 다니며 선·후배와 그 가족들을 만나 자료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김씨는 “자꾸 물건 달라고 하니 이거 아주 거지 중에 상거지다”라며 껄껄 웃었다.
“늦었지만 어차피 시작한 야구박물관이 잘 됐으면 합니다. 주최 쪽에서 광고도 하면서 적극 자료를 모아야 할 것 같아요. 야구 명문학교는 물론 황학동 고물상, 벼룩시장도 돌면서 자꾸 흔적을 더듬어야죠. 저만 갖고는 안 돼요. 허허.” 글·사진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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