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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이태현 “꽃가마 타면 춤 못추랴”

등록 2008-12-09 15:03수정 2013-03-04 16:05

2년여 만에 씨름판으로 돌아온 이태현이 8일 처음 씨름을 시작했던 경북 구미초등학교 씨름장에서 샅바를 잡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구미/조소영 피디 <A href="mailto:azuri@hani.co.kr">azuri@hani.co.kr</A>
2년여 만에 씨름판으로 돌아온 이태현이 8일 처음 씨름을 시작했던 경북 구미초등학교 씨름장에서 샅바를 잡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구미/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격투기 접고 씨름판 돌아온 이태현
샅바를 잡은 게 초등학교 4학년. 또래엔 아예 적수가 없었다. 한 달에 키가 1㎝씩 자랐다. 땀복을 하나 사주면, 일주일 만에 바짓가랑이를 ‘쭉’ 찢어서 왔다. 그 옷을 어머니가 실과 바늘로 기워주면 아버지가 입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까지 지나가던 문 윗부분에 부딪히고, 어제까진 안 닿던 전등갓이 닿고 ….” 그 아이, 이태현(32)은 ‘모래판의 황태자’가 됐다. 천하장사 3회,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18회. 630경기에서 472승 158패(승률 74.9%), 그의 역대 최다승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격투기 접고 씨름판 돌아온 이태현

프로 데뷔후 13년간 모래판 평정
2년반 ‘격투기 외도’ 참담한 성적
피투성이 얼굴 보며 가족 울음보
다시 샅바 붙잡고 재기에 구슬땀

그가 돌아왔다. 22년 전 처음 씨름을 시작한 곳으로. 8일 경북 구미초등학교 씨름장. “으어, 차!” 기합과 함께 160㎏이 넘는 거구를 이리저리 흔들다 결국 바닥에 메다 꽂는다. 이태현은 지난 1일부터 다시 샅바를 잡았다. “첫날이요? 발바닥에 모래가 착착 감기고, 엎드려서 자세를 딱 잡았는데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도는 게 …. 흐흐.”

2년 반이나 실전 씨름을 하지 못했다. 1993년 프로 데뷔 뒤 13년간 모래판을 평정해 온 그는 2006년 7월 돌연 종합격투기로 전향했다. 더는 적수가 없는 씨름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대신, 먼저 격투기를 시작한 후배들이 주목받던 때였다.

빨간 티를 입은 초등학교 4학년 이태현이 풀밭에서 씨름을 해 아버지를 넘어뜨렸다. 졌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이태현 제공
빨간 티를 입은 초등학교 4학년 이태현이 풀밭에서 씨름을 해 아버지를 넘어뜨렸다. 졌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이태현 제공
이태현이 2005년 부산 기장장사 씨름대회 백두급 결정전에서 하상록을 누르고 정상에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한국씨름연맹 제공
이태현이 2005년 부산 기장장사 씨름대회 백두급 결정전에서 하상록을 누르고 정상에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한국씨름연맹 제공

씨름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일본에서 실전 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다. 히카르두 모라에스(브라질)와 맞붙었는데, 8분8초 만에 세컨에서 타월을 던져 경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많이 맞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다. 씨름을 하는 동안 정상에서 내려와 본 적이 없는 그에겐 참기 어려운 치욕이었다. “와, 그땐 정말 미치겠는기라. 훈련 때 하나, 둘 이러면서 배웠는데 실전은 그게 아니니까. 여태껏 몸으로 배운 게 붙잡고 있는 거니까 계속 붙잡고만 있고.” 맞아서 얼굴이 터지고, 부어올랐는데도 울화통이 터져서 아픈 줄을 몰랐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아내 이윤정(30)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전에 격투기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건 사람을 죽기 전까지 패고, 막 피흘리고 …. 안 되겠더라구요.” 2살된 아들 승준이를 데리고 다음날 일본으로 갔다. 피멍이 든 눈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낀 남편에게 “그냥 내옆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좋으니까 그만하라”고 했다. 어머니 김진일(53)씨는 마음속 아픔이 두통이 됐다. 이틀 만에 찾아간 경북대병원에서는 뇌혈관이 부풀었다고 했다. 중풍 예방약을 3개월간 먹어야 했다. “태현이한테 전화가 왔기에 ‘괜찮냐’고 묻는데 괜찮다더라구요. 매스컴에서 보니까 엉망인데 ….”
2006년 9월 프라이드 첫 경기에서 히카르두 모라에스에 얼굴을 심하게 맞은 이태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6년 9월 프라이드 첫 경기에서 히카르두 모라에스에 얼굴을 심하게 맞은 이태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래도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난생처음 바닥까지 왔구나 하는 심정이었어요.” 일본, 러시아 등 외국을 떠돌며 훈련을 거듭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했지만 2년5개월간 3경기에서 1승2패, 출전 시간은 단 9분47초에 불과했다. 참담했다.

결국, 씨름판 복귀를 택했다. 초등학교 때 은사였던 김종화 구미시청씨름단 감독이 그를 끌었다. 가족과 씨름계 선후배들은 “괜찮다”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이태현은 이달 중순 구미시청과 1년간 연봉 1억원에 계약할 예정이다. 목표는 내년 설날 천하장사 씨름대회다. 그는 “우승하면 옛날 세리머니가 아니라 덩실덩실 춤은 못 추겠느냐”고 했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윤정수(23·수원시청)를 넘어야 한다. “연습할 때 샅바를 찢어버릴 정도로 힘이 좋다고 들었어요. 그게 웬만해선 안 찢어지는데 ….” 그는 “그래도 반드시 넘어야 될 산”이라고 했다.

돌아온 ‘탕자’ 같던 그를 반겨준 씨름계 선후배들에게 갚아야 할 빚도 있다. 그는 “막말로 외도를 하고 온 놈인데, 선후배들이 모두들 따뜻하게 안아줬어요. 멋있는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니 반대도 할 수 있는 건데 묵묵히 받아줘 고맙다”고 했다. “씨름은 나를 있게 해준 존재죠. 이제 평생 내가 짊어지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구요. 오래 떠나 있었던 만큼, 더 아끼고 사랑할 겁니다.”

구미/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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