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컨테이너 사는 감독 마음, 제자들은 안다

등록 2009-06-04 19:45수정 2009-06-05 10:04

‘청룡기 준우승’ 천안 북일고 이정훈 감독
‘청룡기 준우승’ 천안 북일고 이정훈 감독
[36.5℃ 데이트] ‘청룡기 준우승’ 천안 북일고 이정훈 감독
생활비 아껴 형편 어려운 선수들 도와
자격증 신청늦어 관중석에서 작전지시
“더그아웃에 있었으면 우승했을텐데…”

천안 북일고 야구장 옆에는 두 평 남짓한 컨테이너집이 있다. 안에 있는 것이라곤 침대, 책상, 그리고 텔레비전. 지난해 12월 부임한 이정훈(46) 감독은 이곳에서 산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털모자를 쓰고 잤고, 최근에는 날파리들이 많아져 에프킬러를 몇 통째 소비하고 있다.

걸어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학교에서 마련해준 아파트가 있지만 가지 않는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데 공과금이나 관리비 내는 게 아깝단다. 그렇게 절약한 돈을 이 감독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에게 몰래 찔러준다. 프로야구 코치 때보다 연봉이 많이 줄어 자신도 넉넉지 않은데도, 열정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베풀고 싶다.

북일고는 황금사자기(3월)와 청룡기(5월)에서 준우승을 했다. 지난해 전국대회 4강조차 들지 못했던 팀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엄청난 연습량 때문이란다. 이 감독이 훈련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그 자신이 바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그는 야구선수치곤 작은 키와 마른 몸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도 많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장소가 전지훈련 숙소건 어디건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는 2년 연속 타격왕(1991~1992년). “안 되면 되게 하는 게 내 신조”라는 그는 “나보다 뛰어난 남을 넘어서려면 그가 500번 방망이를 휘두를 때, 나는 3000번 휘둘러야 한다는 식으로 선수들에게 훈련의 중요성을 설명해준다. 훈련의 성과가 눈에 보이니까 선수들도 재미있어하고 잘 따라준다”고 했다.

북일고는 현재 53개 고교 중 공격력만큼은 최고의 팀이 돼 있다. 매일 밤마다 흘린 땀의 결과다. 컨테이너집은 지난 6개월 동안 새벽 1시 이전에 불이 꺼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된 훈련에 지칠 법도 하건만 되레 선수들 얼굴은 밝다. 선수식당 앞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예전에는 훈련량이 적어도 억지로 하곤 했는데, 이 감독님 부임 이후에 아들이 참 즐거워하고 밤까지 훈련해도 좋아한다”며 미소짓기도 했다.


‘청룡기 준우승’ 천안 북일고 이정훈 감독
‘청룡기 준우승’ 천안 북일고 이정훈 감독
아마추어 지도자로 처음 부임해, 난감했던 상황도 있었다. 지난 2월 전지훈련 떠나기 전 “대학 감독들에게 술이라도 접대하라”며 뭉칫돈을 들고 온 학부모가 있었던 것. 이 감독은 “‘날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극구 사양했는데도 계속 머뭇거려 버럭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는 선수 때부터 가슴에 품어온 ‘덕은 외롭지 않고, 의는 부끄럽지 않다’는 신조를 아마추어 지도자가 돼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다.

이 감독은 청룡기 결승까지 경기 때마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지 못했다. 행정적 실수로 아마추어 지도자 자격증 신청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야 겨우 신청을 마쳐 7월 초 열리는 대붕기부터는 더그아웃에 앉아 선수들을 지휘할 수 있게 됐다. “관중석에 앉아서 코치에게 작전을 지시하면서 70통 넘게 전화했어요. 아마도 더그아웃에 있었다면 최소 한 번은 우승했을 텐데….” 청룡기 준우승 때 아이들이 펑펑 우는 것을 보고, 그는 몇 차례나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이 아니다. 그저 선수들이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 프로든, 대학이든 진로를 터주고 싶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고개 한 번 안 숙여봤지만,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서는 대학 감독이든 누구에게든 기꺼이 머리를 숙일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수들을 챙겨야 해서 “감독이 아니라 머슴”이라고 투덜대는 이정훈 감독. 그래도,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제자들 인생이 달려 있다’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매일 컨테이너집을 나선다.

이정훈 감독은

1963년 8월28일 출생
대구상고-동아대 졸업
87~94 빙그레(한화) 선수
95~96 삼성 선수
97 OB 선수
99~05 한화 코치
06~08 LG 코치
08.12~ 천안 북일고 감독

천안/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