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포기하며 준비, 국내에 없는 ‘활강 금’ 뿌듯
“저보고 깜짝스타라고…이 바닥선 예상했는데”
“저보고 깜짝스타라고…이 바닥선 예상했는데”
알파인 첫 2관왕 김선주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넘어졌다.(오른쪽 아래 사진) 역대 최초 스키 3관왕의 꿈이 무너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자국 선수를 응원하던 카자흐스탄 관중들이 유력한 우승후보가 넘어지자 기뻐하는 소리였다. 순간 눈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분했다.
“많은 경기를 나가봤지만, 선수가 넘어졌는데 좋다고 박수 받은 건 처음이라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아경기대회 2관왕 김선주는 벌떡 일어섰다. 완주를 포기하고 걸어 나갈 수도 있었지만, 보란듯이 쌩쌩 달렸다. 결승선을 일부러 멀찍이 지나치고서야 눈밭에 털썩 누웠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어요.”
이미 활강과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스키 최초로 대회 2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던 김선주였지만, 4일 슈퍼복합에서 넘어졌던 것이 지금도 분한지 주먹을 꼭 쥔다. 역대 아시아경기대회 첫 활강 여자 금메달리스트 김선주를 이끌어온 것은 이런 강한 승부욕이었다.
카자흐스탄이 겨울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종목은 빼버리는 등 텃세를 부렸지만, 이조차 김선주의 ‘오기’를 부추겼을 뿐이다. “저를 포함해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이 강했던 회전, 대회전 종목이 빠졌다기에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활강은 몸무게 증량이 중요해 다이어트 포기하고 살도 찌웠구요.”
그 결과 처음 도입된 알파인스키 활강 금메달은 국제규격 활강 코스조차 없는 한국에 돌아갔다. 그 전까지 ‘한국 스키의 차세대 간판’으로 불리는 남자부 정동현에게만 쏠렸던 관심이 김선주에게 몰린 것도 당연했다. “대회 첫날 여자부 경기에 온 한국 기자가 아무도 없어 비인기 종목임을 실감했다”던 그에겐 이런 관심이 도리어 놀랍다.
“저보고 ‘깜짝 스타’라고, 예상 못 한 메달이라고 그러시는데 사실 제가 여자 스키 국가대표 중엔 최고령자거든요. 이 바닥에선 (메달을) 예상은 했어요.” 다부지게 못을 박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앳된 외모지만 김선주는 지금까지 숱한 부상을 딛고 국내 최정상에 선 베테랑이다. 고교 시절 전국체전 4관왕에 올랐고, 중앙대 재학 시절에는 2006년 전국종별스키선수권대회 슈퍼대회전과 대회전에서 우승하며 국내 정상에 올랐다. 2007년 창춘 겨울아시아경기대회 대회전 동메달을 따냈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국제스키연맹(FIS) 포인트로 자력 출전한 선수가 됐다. 그 전까지 여자부 선수들은 국가별 할당으로 올림픽에 진출했다. 겨울아시아경기대회 공식 누리집에서는 ‘주목할 만한 선수’로 김선주를 소개했을 정도다.
“제가 겁이 없어요. 시합 전 출발선에서 두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힘이 났죠.” 초등학교 1학년 때 강습받는 오빠를 따라 처음 스키를 신었을 때부터 그랬다. 배운 적도 없는데, 리프트 1회권을 끊어 올려보내니 쓱쓱 산을 지치고 내려왔다. 코치가 “겁이 없으니 뭘 해도 되겠다”며 엄마를 설득한 것이 시작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입에 안 맞는 음식으로 고생하기는커녕 “너무 잘 먹고 와서 살이 쪘다”고 화통한 소리로 웃는다.
김선주는 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치고 9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국스키선수권대회에 출전중이다.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지만, 금메달 따더니 변했다는 말 듣는 게 싫다”던 마음가짐처럼, 그는 오래도록 변치 않고 스키를 잘 타는 선수가 되고 싶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는 벌써 30대인데, 그때까지 잘 탈 수 있겠죠?” 김선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평창/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해적이 금미호 선원 124일만에 석방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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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프로필
김선주는 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치고 9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국스키선수권대회에 출전중이다.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지만, 금메달 따더니 변했다는 말 듣는 게 싫다”던 마음가짐처럼, 그는 오래도록 변치 않고 스키를 잘 타는 선수가 되고 싶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는 벌써 30대인데, 그때까지 잘 탈 수 있겠죠?” 김선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평창/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해적이 금미호 선원 124일만에 석방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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