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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걸고 달렸다”

등록 2011-02-11 20:06수정 2011-02-12 04:04

이채원 선수
이채원 선수
[36.5 도씨 데이트] 크로스컨트리 스키 아시안게임 ‘기적의 금메달’ 이채원
금 45개 동계체전 ‘여왕’
국제무대 무관 설움 씻어
‘축구 월드컵 4강 맞먹어’
“체격 밀려 체력훈련 주력”

기적이라고 했다. 설상 종목의 대약진으로 화제가 된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아경기대회였지만, 스키 관계자들은 그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이채원(30·하이원)의 금메달을 꼽았다. “크로스컨트리스키 금메달은 축구 월드컵 4강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크로스컨트리의 외로운 간판’ 이채원은 2일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스타일에서 36분34초6의 기록으로 한국 크로스컨트리스키 첫 금메달을 따냈다. 겨울올림픽, 겨울아시아경기대회,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틀어 최초다.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북유럽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동구권 선수들이 우월한 체격조건을 앞세워 메달을 휩쓸어온 종목이다.

“97년 처음 국가대표가 된 지 15년째에 따낸 금메달이에요. 체력이 달려 지난해엔 은퇴까지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를 거둬 꿈만 같아요.” 겨울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고 1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전국동계체육대회를 준비중인 이채원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경기 중에 김대영 감독님이 ‘지금 1위다, 인생을 걸고 달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대표팀 동료들도 ‘누나 1위야’ 하고 소리치며 따라와줬고요. 믿겨지지 않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달렸어요.”

전국동계체육대회 4관왕만 6차례를 기록하며 역대 통산 최다 금메달 신기록(45개)을 세운 크로스컨트리 여왕이었지만, 국제무대의 벽에 번번이 부닥쳤던 15년의 설움이 이번 우승을 계기로 녹아내렸다. “팔다리가 긴 외국 선수들의 한 걸음과 153㎝의 제 한 걸음은 차원이 달랐죠. 포기하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체력이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독하게 지구력 훈련을 해왔어요.”


우승에 힘을 보탠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대회 때 카자흐스탄 기온이 올라 눈도 없고 습해져 최악의 날씨였대요. 시합 전 경기 코스에 길가의 눈을 삽으로 떠서 퍼붓고 있을 정도였어요.” 질척해진 눈, 흙과 자갈까지 스키에 긁히는 악조건 속에서 외국 선수들은 옴짝달싹 못했다. “국내는 마음놓고 크로스컨트리 훈련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눈 녹는 3월에 폐장한 스키장을 빌려 연습하기도 일쑤였는데, 오히려 복이 된 셈이죠.”

지난해 3월 결혼한 그에겐 남편 장행주(30)씨의 외조도 큰 힘이 됐다. “힘든 체력훈련을 대신 해주고 싶다”며 안쓰러워하던 남편은 경기 이틀 전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열어보니 난생처음 크로스컨트리스키를 신은 남편이 낑낑대며 산을 오르고 있는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어떤 고생이든 당신과 함께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말에,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났다”.

이채원 선수 프로필
이채원 선수 프로필

“결혼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용감해져서” 금메달도 딴 것 같다는 그는 “사실 내성적이고 겁이 많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스키 선수라면 믿어지세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부터 매일 50분씩 걸어 등교했던 그는 원래 달리기를 잘했단다. 중학교엔 육상부가 아닌 스키부가 있었다. 육상 실력을 눈여겨본 선생님이 “높은 데서 내려오는 거 겁난다”는 그를 “넌 걱정할 것 없다”며 입부시켰다. 그때만 해도 크로스컨트리가 뭔지도 몰랐다. “여름 내내 체력훈련을 시켜도 처음이라 그러려니 했죠. 겨울에 처음 스키를 봤는데, 선배들은 다 알파인스키 타고 내려가는데 저만 다른 모양의 스키를 신고 걸어 올라오라지 뭐예요.” 그래도 성격대로 묵묵히 따랐단다.

달리기를 좋아했던 조용한 소녀가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최연장자이자 ‘유일한 기혼자’가 되기까지 15년여 세월은 오직 끈기와 노력으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단은 15일 열리는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3관왕이 돼 역대 통산 금메달 기록을 48개로 경신하는 게 목표예요. 크게는 소치 겨울올림픽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평창/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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