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이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에서 밴쿠버올림픽 메달을 축하하는 걸개그림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AG 3관왕·월드컵 ‘은’
“힘들지만 안 드러내”
스케이트 탈때 행복
“30대 중반까지 달릴것”
“힘들지만 안 드러내”
스케이트 탈때 행복
“30대 중반까지 달릴것”
[36.5℃ 데이트] 장거리 빙속 간판 이승훈
1만m. 10㎞는 마라톤 단축코스 거리다. 이 거리를 10여분 만에 주파해야 한다. 트랙 24바퀴를 반쯤 돌면 벌써 심장이 목까지 치솟아 오른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스피드 종목 아시아 첫 금 이래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아경기대회 3관왕, 그리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빙속월드컵 은메달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희망’ 이승훈(23·한체대)은 쉴새없이 달리고 있다.
“정말 힘들어요. 특히 트랙 24바퀴에서 12~14바퀴쯤 돌 때는 ‘지금만 참자’고 몇 번씩 스스로 되새겨요. 지친 걸 드러내지 않을 뿐이죠.” 22일 모교인 한체대 빙상장을 찾은 이승훈은 “그래선지 평소에도 ‘포커페이스’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강행군에는 장사가 없는 법. 담담한 얼굴과 반대로 연거푸 눈에 인공눈물을 넣었다. “시차 때문인지… 잠을 못 잤어요. 그래 보이지 않나요?” 밴쿠버 ‘꽃미남’이 살짝 부은 듯한 눈가를 문지르며 대수롭잖게 말한다.
겨울올림픽 사상 아시아인 최초로 따낸 스피드 1만m 금메달이 깜짝쇼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이승훈은 지난달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겨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3관왕을 휩쓸었다. 숨도 미처 고르기 전 빙속월드컵 7차대회를 위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로 날아갔고, 누적된 피로에도 보프 더 용(35·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이제 아시아의 희망을 넘어 세계 빙속의 간판이 됐다.
하지만 그는 빙속월드컵 은메달이 못내 아쉽다. “욕심만큼 잘 안됐어요. 체력에서 우월한 유럽 선수들과 겨뤄 금메달을 따내야 했는데….” 3월10일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쉬기도 부족할 3주 동안 훈련계획을 빽빽하게 세웠다. “아시아경기대회에 빙속월드컵까지 지치지만, 항상 컨디션이 좋을 순 없는 거니까 극복해야죠.”
그는 ‘밴쿠버 삼총사’ 중 가장 꾸준한 결과를 내고 있다. “모태범이나 이상화는 경쟁이 치열한 편인데 스피드 장거리 종목은 저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겸손한 대답이지만, ‘올림픽 금메달 후유증’이 없었을 리 없다. “쇼트트랙에서 장거리로 전향하고 첫 시작부터 금메달을 따고보니 부담감도 있고, 다른 것들도 많이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광고도 찍어보고 연예인도 실컷 구경했지만, 역시 스케이트를 타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단 걸 깨달았어요.”
‘스케이트 다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묻자 “마땅한 취미가 없다”며 갸웃거리던 그는 “여느 남자애들처럼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밴쿠버로 출국하기 하루 전, 운동선수 아들의 기사 노릇을 자청해 온 아버지께 ‘금메달을 따면 차를 갖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농담삼아 들으셨는지 덜컥 그러마 하셨거든요. 그땐 정말 딸 줄 모르셨겠죠?”(웃음) 그래서 생긴 자동차는 그의 보물 1호. 그는 “고속도로에서는 절대 안전 운행한다”고 덧붙인다. “다칠까봐 평소에 축구도 하고 싶지만 안 하거든요. 운전도 트랙에서와 달리 정말 저속 운행이에요. 안전해야죠.” 춘천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스포츠카를 보면 운전자가 이승훈인지 의심해 볼 일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을 주면서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는 타입이어서 오래도록 꾸준할 수 있었다”고 비결을 말하는 그에게 시즌 뒤 무엇을 할지 물었다. 대학 시절 한 번도 못 가본 배낭여행을 가고 싶단다. 그는 24일 대회 일정상 받지 못했던 한국체육대 졸업장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정상을 향해 다시 달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는 이승훈은 “소치올림픽 금메달로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오르고, 보프 더 용처럼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약을 펼치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이승훈
이승훈 프로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을 주면서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는 타입이어서 오래도록 꾸준할 수 있었다”고 비결을 말하는 그에게 시즌 뒤 무엇을 할지 물었다. 대학 시절 한 번도 못 가본 배낭여행을 가고 싶단다. 그는 24일 대회 일정상 받지 못했던 한국체육대 졸업장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정상을 향해 다시 달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는 이승훈은 “소치올림픽 금메달로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오르고, 보프 더 용처럼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약을 펼치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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