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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너 이××야, 이리와… 퍽 퍽…” 락커룸은 ‘지옥’이었다

등록 2005-07-19 20:40수정 2005-08-05 17:40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1.누가 이들을 때리는가?
2.우리도 외박 나가고, 휴가 가요.
3.학생인가? 프로선수인가?
4.지도자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5.금메달에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
6.대학을 바꾸자, 연고대부터

학생 스포츠 선수들이 일상적인 매질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공부는 뒷전이다. 신분은 학생이지만 프로선수처럼 운동만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길 두려워한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운동부에 보내고 싶지만, 운동부에 보낸 뒤 돌아올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돼 어린 선수들에게 야만적인 폭력을 가하고, ‘운동하는 기계’로만 몰아가는 황폐화한 학원스포츠의 위기 상황을 해부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하고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모색해본다.

전반전을 0-0으로 끝낸 하프타임 코치는 때리고 욕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단 한마디 단 1초도 전술지시는 없이…

■ 최근 =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의 라커룸. 방금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여자 코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전반전을 0-0으로 끝낸 선수들이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다. 코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여자 선수들을 자리에 앉히지도 않고 빙 둘러 세운다.

 “너 이리 와!”라고 소리치자 지명받은 선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코치에게 다가선다.


매섭게 뺨을 때린다. 잇따라 주변에 있던 3~4명의 얼굴에도 주먹을 날린다. 말도 험악하다. “이 ××야, 이리 와, 내가 무서워? 수비하기도 무섭냐? 왜 못 달라붙는 거야?”

또다른 선수한테는 “너 운동화 끈 풀어. 너 운동하지 마. 네가 잘해서 뛰게 하는 줄 알아”라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쏟아붓는다.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인 최종덕 서산시민구단 감독은 “하프타임은 전반전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자신감과 새로운 힘을 충전시키는 휴식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코치는 때리고 욕하는 데 하프타임의 대부분을 보냈다.

 “야, 너는 뭐 하는 거야. 골을 넣으라고 주면 골을 넣어야지 왜 못 넣어. 이 ××야.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어”라며 공격수를 몰아세운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눈을 내리깔고 단체로 “예”, “아니오”만을 복창할 뿐이다. 외부는 휴식 시간이라 들뜬 분위기였지만, 격리된 세 평짜리 라커룸 안에서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때리는 것도, 욕하는 것도 지쳤나 보다. 코치의 “야, 물 먹어”라는 말에 선수들이 한쪽으로 몰려들더니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후반 시작 1분 전이었다.

10분간의 하프타임 때 단 한마디, 단 1초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많이 맞은 한 미드필더는 후반 들어 위축된 듯 공을 더 못 찼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연장 무승부 뒤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코치는 “때려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또 다른날 = 효창운동장의 똑같은 라커룸. 초등학교 경기 하프타임. 한쪽 팀 감독이 얘들을 라커룸에 빙 둘러 설치된 의자에 앉히더니 “내일 결승 못 가도 좋아. 오늘 뛰란 말이야. 끝날 때 그냥 걸어나오는 새끼 있으면 죽은 줄 알아. 다리가 부러져도 막으란 말이야. 이 돌대가리 ×××야.”

흔히 유소년 축구는 축구 입문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축구에 흥미를 갖게 하고, 즐겁게 공을 차며, 기술 축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교본에 나온다. 그러나 이 어린이들한테 즐기는 축구는 없다.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오직 이기는 축구만이 전부인 것이다. 살벌한 분위기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손을 무릎 위에 쭉 뻗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감독은 한 선수를 지목하며 “너 때문에 안 되잖아.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며 어린 가슴을 마구 할퀸다.

 그러나 아이들은 “원래 좋으신 감독이에요” “우리가 잘못하니까 그렇죠”라고 말한다. 25분 경기하고 쉬는 10분 동안의 지옥 같은 현장은 과연 이날뿐이었을까? 또 아이들이 숨도 쉬지 못하는 하프타임 라커룸에서의 지옥이 효창운동장에서만 있었을까?

월드컵 4강에 오른 축구 선진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대표선수를 키운 토양인 초·중·고 스포츠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오늘도 나무로 맞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육상부 여자선수의 고백

폭력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더욱이 어릴수록 충격은 크다. 힘든 운동을 하면서 매까지 맞아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멍들어 있다. 지방 초등학교 한 육상부 여자 선수가 밝힌 폭력 피해 내용을 일인칭 시점의 일기로 재구성했다.

벌써 6학년이다. 운동 시작한 지 3년이다. 힘이 너무 든다. 키 좀 크고 잘 뛰니까 육상부 들어오라고 해서 운동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싫고 두렵다.

오늘도 맞았다. 자세가 좋지 않고, 기록도 안 나오기 때문이란다. 평소에는 자상한 선생님이 화날 땐 정말 괴물로 변한다. 운동장 옆에 있는 겨울철 훈련 시설인 비닐하우스 안으로 끌고 가더니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허들의 나무 막대기로 때린다. 3대 맞으니까 눈물이 핑 돈다.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다른 아이 두 명도 운다. 손바닥을 맞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참는다. 가장 아플 때는 뺨을 맞을 때다. 몽둥이로 맞을 때보다 더 슬프다.

연습할 때는 한달에 두세번 이렇게 매를 맞는다. 운동장에서는 거의 때리지 않는다. 경기에 나갔을 때도 때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다,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것 같다.

 그런데 맞을 때는 선생님이 밉기도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하다. 차리리 때리지 말고 기합을 주면 좋을텐데. 기합을 받으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니까. 때리지 않고 즐겁고 재미있게 육상을 가르쳐줄 선생님은 없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 끝나면 학원 다니고 군것질하면서 어울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지만 코치 선생님이나 부모님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을 것 같다. 너무 졸립다.

* 학원스포츠의 폭력과 비리 등에 대한 경험담과 제보를 받습니다.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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