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선수 방귀만. 용인/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장 달린다②
20일 경기도 용인대학교 무도 대학 훈련장. 상대 옷깃을 쥐고 상체를 흔들던 방귀만(31·남양주시청)이 번개처럼 아래로 방향을 바꿔 허벅다리와 발뒤축으로 쳐들어간다. 눈 깜짝할 새 바닥을 구른 상대 선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밭다리후리기를 들어갔다가 안 통하면 외깃으로 잡고 허리후리기로 감아 치라고!” 조인철(38) 유도대표팀 감독이 방귀만의 약점인 왼 기술 선수 공략법을 지적하자 이번엔 상대를 허리에 얹어 몸을 기울이더니 순식간에 매트에 내다 꽂는다.
1시간30여 분간 상대를 바꿔가며 쉴 틈없는 훈련을 마친 방귀만은 땀에 흠뻑 절어 있었다. 31살. 유도선수로는 ‘환갑’이라는 나이다. 비슷한 시기 전성기를 지냈던 최민호(34), 이원희(33) 등이 현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그는 “기량이 최고였던 시절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더 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따라 유도를 시작한 방귀만은 10대 때부터 대형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19살이던 2002년 청소년대표에 뽑혔다. 같은 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유망주에게 매달 1200달러 지원금과 국제대회 출전 경비를 주는 ‘IOC 장학생’에 한국 선수로는 처음 선발됐다. 2004년엔 21살 나이로 아테네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시련이 거듭됐다. 첫 올림픽에서 경험부족으로 1회전에서 탈락했다. 이후 66㎏급에서 체중 조절에 실패하면서 부상과 성적 부진이 반복됐다. 결국 체급을 73㎏급으로 올렸지만, 세계최강 이원희(은퇴·현 대표팀 코치), 왕기춘(현 81㎏급)이 버티고 있었다. ‘영원한 2인자’라는 별명은 이때 붙었다. 2010년 월드마스터즈(세계 16강 최강자전)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7개 국제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맞는가 싶었지만, 그해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우연히 금지 약물이 포함된 보충제를 먹은 게 2년간 출전정지 징계로 이어졌다.
방귀만에게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유도 인생에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이 그런 것을 털 수 있는 기회다. 도핑 징계 이후 가장 큰 대회여서 기대하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10년 넘게 대표팀을 오갔지만 처음 나가는 아시안게임이기도 하다.
현재 남자 유도 73㎏급은 아시아 1~3위 선수들이 고스란히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어 아시안게임 금메달 경쟁의 치열함이 올림픽과 다르지 않다.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난적들이 버티고 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왕기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아키모토 히로유키(28·일본)도 넘어야 한다.
이제는 대표팀 내 최고령 선수가 됐다. 나이만큼 떨어지는 체력을 어쩔 수 없다. 방귀만은 “어렸을 때보다 부상이 잦고, 회복이 더딜 수 밖에 없다. 20대 초반 때처럼 운동을 하면서 신체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있는 만큼 체력 문제는 전혀 없다”며 “근력을 키우는 요령과 경험과 노련미가 생겨서 이전보다 더 경기력은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인철 대표팀 감독도 “주특기인 허벅다리 걸기를 비롯해서 기술의 정확도가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 나이가 들면서 노련해지는 만큼 기량은 하락하기 마련인데, 방 선수는 두 가지를 모두 상승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매트 위에서 보낸 시간이 20여 년에 이른다. 체급을 떠나 대표팀 안에서 기술과 노련미를 따라올 이가 없다.
유도는 한때 무너질 뻔했던 그를 지탱해준 아내 김유진씨와 두 아이 준서(3), 수진(1)이한테 ‘가장’ 방귀만의 존재 의미를 설명해줄 방법이기도 하다. ‘방귀만한테 유도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인생 그 자체에요. 그래서 저는 도망갈 데 없어요. 힘겨운 일을 겪으면서도 다시 매트에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선수로서 아시안게임은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여기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용인/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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