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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미친 소녀’ 김설아, 은메달 따고 “배고파” 털털

등록 2014-09-26 16:31수정 2014-09-27 09:29

26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50미터 소총 3자세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유서영, 정미라, 김설아.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6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50미터 소총 3자세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유서영, 정미라, 김설아.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격 50m 소총 단체전에서 은메달 획득
강초현 이은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라
총에 미친 소녀가 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 온통 사격 생각뿐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놀더라도 연습을 하고 자야 직성이 풀린다. 텔레비전을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드라마를 봐야 한다. 그래야 잠시라도 머릿속에서 사격을 떼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키 156cm의 김설아(18·봉림고)는 4㎏의 사격복을 입고 5㎏의 소총을 든 뒤 다시 한번 사선에 섰다. 그리고 ‘은빛 총성’을 울렸다.

김설아는 26일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50m 소총 3자세 단체전에서 정미라(27·화성시청), 유서영(19·한국체대)과 함께 중국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그에겐 10m 공기소총 단체전 동메달에 이어 두번째 메달이다. 금메달은 아니지만 사격계는 10년 만에 화약소총과 공기소총을 둘 다 잘 쏘는 여고생이 나타났다고 반기고 있다.

그는 경남 거창 혜성여중 2학년 때 주말 ‘방과후 학교’를 통해 사격에 입문했다. “총을 쏘는 게 신기했어요. 코치님의 지도를 받고 메달을 따니까 기분도 좋았고요.”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창원 봉림고로 진학했다. 문제는 거창과 창원의 거리였다. 학교엔 기숙사도 없었다. 결국 혼자 자취를 해야 했다. 창원사격장 바로 옆에 원룸을 얻었다.

거창에서 딸기와 수박 농사를 짓는 부모는 딸이 안쓰러웠지만 생업 때문에 자주 찾아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김금예씨는 “처음엔 수시로 갔지만 요즘엔 잘 챙겨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롭긴 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버팀목이 됐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사격에만 매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자취생활의 비용은 거창 체육계의 장학금 지원을 받았다.

김설아는 짧은 경력에도 자신만의 사격 기술을 만들어냈다. 총을 쏘기 전마다 하는 손에 입김을 부는 동작이 대표적이다. “다른 선수들은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는데 저는 반대로 손이 말라요. 경기 전에 핸드크림도 바르죠. 그래야 조준이 잘 돼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신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잘할 수 있어’, ‘좀 아래로 쏘자’같은 말들을 마음 속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약하게 소리를 내서 하죠.” 일종의 자기대화법이다. 그를 지도해온 김현민 봉림고 코치는 “설아가 지난해부터 심리적인 기술을 연구했다. 경기 중 고비가 올 때마다 이 방법으로 극복해왔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50미터 소총 3자세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설아.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6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50미터 소총 3자세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설아.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선수생활 시작하며 창원으로 유학
짧은 경력에도 ‘자신만의 기술’ 터득
대표팀 코치 “리우에서 큰 일 낼 선수”
졸업 뒤엔 ‘진종오 소속팀‘ KT 입단

약점은 경험 부족이다. 지난달 미디어데이에서 “대표 선발전을 치를 때 아무 탈 없이 끝나기만을 바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긴장을 많이 했다. 하지만 대회 직전 열린 스페인 그라나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 50m 소총 3자세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고, 10m 공기소총 개인전에서 14위를 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첫 국제대회였고, 국외에 나간 것도 처음이었지만 좋은 성적을 냈다.

아시안게임 메달은 땄지만 10m 공기소총 개인전 결선에서 경기 초반 흔들리며 탈락했다. 50m 소총 3자세 본선에선 가장 자신있는 입사(서서 쏴) 점수가 좋지 않았다. 이효철(울진군청 감독) 대표팀 코치는 “10m 공기소총에선 국제대회 첫 결선이라 긴장을 많이 했고, 50m 소총 3자세에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구력이 짧아 바람을 정확히 못 읽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설아가 아직까지 미완성 작품이라고 했다. “설아는 머리가 좋아 골라 담는 능력 있어요. 여러 지도자들이 많은 얘기를 해주면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재주가 탁월합니다.” 그는 2~3년 뒤 김설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거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도자들은 딱 보면 안다. 지금처럼만 훈련한다면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큰 일을 낼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김설아는 아시안게임을 끝내는 마지막발을 쏜 뒤 응원 온 어머니가 다가오자 “배고파”라고 말하며 홀가분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날 경기장에 오지 않은 아버지 김병수씨가 전화 통화로 “축하한다”고 말하자 “아빠, 별로 축하하는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영락없는 여고생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던 강초현이 연상된다고 하자 “그런 말 들으면 좋긴 한데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안 된다. 조금 안 어울린다”며 웃었다. ‘국민 여동생’ 으로 떠올랐다는 질문엔 “처음엔 웃어 넘겼는데 계속 듣다 보니 너무 부담스럽고 민망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의 1번이 사격이라는 그는 오른손등엔 ‘☆ KOREA’, 오른손 검지 손톱엔 태극기, 왼손 검지 손톱엔 과녁을 그려 넣은 채 경기를 했다. 고3인 김설아는 내년초 졸업 뒤 케이티(KT) 사격단에 입단해 리우올림픽을 준비한다. ‘사격계의 전설’ 진종오(35)의 소속팀이다. “큰 대회가 끝나니 정말 좋아요. 이제 내년부터 열릴 올림픽 대표 선발전과 올림픽 쿼터(출전권)가 걸린 국제대회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천/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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