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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연 “오늘만큼은 여자축구 박수받을만 하다”

등록 2014-09-30 16:36

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허은별이 역전골에 성공하고 팀 동료와 환호하고 있다.(인천=연합뉴스)
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허은별이 역전골에 성공하고 팀 동료와 환호하고 있다.(인천=연합뉴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지소연(23·첼시 레이디스)은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아쉽게 놓친 아쉬움때문만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열악한 환경과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싸워 왔는지 잘 알기에, 그리고 팬들의 관심을 받는 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승리가 더욱 간절했던 지소연이었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4강전에서 1-2로 패했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경기 종료 직전 북한 허은별에게 일격을 당하며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지소연은 한국 여자 축구에 몇 안 되는 스타 플레이어다. 2006년 10월 피스퀸컵 브라질전에서 만15살8개월에 최연소 A매치 출전기록을 세우는 등 일찍이 ‘천재’로 불렸고, 2010년 독일에서 열린 20살 이하(U-20) 여자월드컵에서는 8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3위를 견인해 일약 스타가 됐다.

그러나 여자축구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했다. 대부분의 선수는 텅빈 경기장에서 리그 경기를 해야 한다. 대표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여자 대표팀은 남자 선수들이 들어오면 버스도, 훈련장도 비워줘야 했다. 여자 대표팀 주장 조소현은 지난 5월 남자 대표팀의 브라질월드컵 출정식을 텔레비전으로 보다가 서러운 마음에 채널을 돌려버리기도 했다.

짧게나마 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소연은 잘 알고 있었다. 지소연은 경기가 끝난 뒤 “여자축구는 중계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관심을 받는 게 국제대회다. 우리가 잘해줘야 팬들도 관심을 갖고 후배들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번 대회가 더 절실했다”고 말했다.

지소연은 잉글랜드 여자프로리그에서 1위를 달리는 지소연의 소속팀 첼시 레이디스의 반대를 꺾고 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아시안게임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의무 차출 대회가 아니다. 리그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첼시는 에이스 지소연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소연의 간곡한 설득에 첼시 레이디스는 8강과 4강, 2경기만 뛰도록 허락했다. 단 2경기만 뛸 수 있는 자신을 위해 귀중한 대표팀 엔트리 한 자리를 비워준 윤덕여 감독과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지소연은 반드시 자신이 출전하는 두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싶었다.

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지소연은 북한과의 경기에서 에이스다운 기량을 보여줬다. 날카로운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줬고, 상대 수비수를 달고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었다. 1-1로 팽팽히 맞선 후반 44분에는 상대 공격을 끊어낸 뒤 직접 드리블 돌파로 기회를 만들어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때렸다. 그러나 이 슛은 크로스바에 막혔고, 몇분 뒤 북한에 역전골을 허용했다. 결국 지소연은 눈물을 흘렸다.

지소연은 경기 뒤 “몸이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내가 더 많이 뛰었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윤 감독과 다리가 풀릴 때까지 뛰어다니고 공을 향해 몸을 던진 동료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만큼은 여자 축구가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한 동료들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보여줬다.

지소연은 경기 이튿날인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다시 영국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첼시 레이디스가 지소연에게 허락해준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10월1일 예정된 베트남과의 3-4위전에서는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영국에서 응원해야 한다. 지소연은 “동메달을 따줄 것이라고 100% 믿는다. 우리 선수들이 비난이 아닌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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