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리)분희 언니와 만나는 거예요.”(현정화)
한국의 탁구 스타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의 간절한 바람은 결국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현 감독과 북한의 탁구 영웅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이 닷새 간격으로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23년 만의 재회가 어렵게 됐다. 현 감독이 음주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에서 물러난 데 이어 리 서기장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것으로 2일 알려졌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해 우승을 이끈 둘은 오는 18일 개막하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23년 만에 재회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뇌성마비 아들을 둔 리 서기장은 2012년 8월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당시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한 바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이날 영국의 대북지원 민간단체 ‘두라’ 대표인 이석희 목사의 말을 따 “리 서기장이 지난달 25일 저녁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트럭과 충돌해 크게 다쳤다”고 전했다. 리 서기장은 이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감독은 1일 혈중알코올농도 0.201%의 만취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 사고를 낸 뒤 경찰에 입건됐다. 현 감독은 사고 직후 선수촌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현 감독은 이날 공개한 자필 사과문에서 “오랫동안 한결같이 저를 사랑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갑작스럽고 불미스러운 일로 큰 실망을 안겨 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에 대한 질책을 달게 받고 향후 자숙하여 반성의 시간을 갖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둘의 뜻밖의 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건 이들의 만남과 이별을 둘러싼 애틋한 사연 때문이다. 둘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갑작스럽게 꾸려진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세계선수권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따돌리고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첫 만남에서부터 훈련기간 함께 흘린 땀방울, 극적인 우승 그리고 눈물 속 이별까지 46일간 남북 단일팀의 이야기는 우승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로 한반도에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2년 영화 <코리아>로 제작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2년 뒤 스웨덴 예테보리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재회할 기회를 얻었지만 먼발치에서 잠깐 인사를 하는 데 그쳤다.
현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리 서기장에 대한 그리움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특히 현 감독이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에 임명되고 리 서기장이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꿈같은 재회가 현실로 이어지는 듯했다. 현 감독 스스로도 재회 의지가 강했다. 지난달 열린 선수촌장 위촉식에서 현 감독은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분희 언니와 만나는 것”이라며 “기회가 되면 내 손으로 지은 밥 한 끼를 꼭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감독이 선수촌장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리 서기장의 교통사고 소식이 겹치면서 이들의 재회도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둘의 만남을 통해 북한의 열악한 장애인 체육계 현실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고 남북간 장애인 체육의 교류도 활성화되기를 바랐는데 뜻밖의 일이 터지면서 기대를 접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연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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