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5종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지(왼쪽부터), 양수진, 김선우, 정민아가 2일 오후 인천 드림파크승마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단체전 사상 첫 금메달
펜싱·수영에서 2위로 달리다
중국 2명 승마 ‘0점’…역전 성공
“무에서 유 창조…새역사 썼다”
펜싱·수영에서 2위로 달리다
중국 2명 승마 ‘0점’…역전 성공
“무에서 유 창조…새역사 썼다”
김선우(18·경기체고)는 승마 경기를 끝낸 뒤 울먹였다. 장애물을 수차례 넘어뜨리며 37점의 감점을 당했기 때문이다. 근대5종 여자 대표팀 막내로서 “언니들한테 민폐만 안 끼쳤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반전이 일어났다. 세계 최강 중국 선수 4명 중 2명이 승마에서 ‘실권’(0점)을 당한 것이다. 1명은 말에서 2차례 떨어졌고, 다른 1명은 말이 장애물 넘기를 4차례나 거부했다. 복합경기(사격+육상)가 남아 있긴 했지만 한국 여자 근대5종의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양수진(26·LH), 정민아(22), 최민지(21·이상 한국체대), 김선우는 2일 인천 드림파크근대5종경기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근대5종 여자 단체전에서 5120점을 기록하며 일본(4760점)과 중국(4722점)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개인전에선 양수진과 최민지가 1위 천첸(중국)에 이어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수진은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였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근대5종의 역사를 우리가 썼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펜싱과 수영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한 한국은 세번째 승마 경기를 앞두고 긴장했다. 말 추첨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전 중간 순위 1위 천첸이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자 모니터에 말 21마리의 배정 결과가 나타났다. 국내 근대5종 선수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천마’를 비롯해 실력이 뛰어난 말들이 중국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말과의 교감이 중요한 승마는 근대5종의 가장 큰 변수다. 준비된 말들을 충분히 타볼 수 있는 안방경기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유다. 하지만 20마리가 넘는 말들과 모두 친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좋은 말을 배정받는 운도 따라야 한다. 최경민 대표팀 승마코치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말들을 배정받았다. 20분 동안 워밍업을 마치고 어떻게 타야 할지 재빨리 판단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 중 첫번째로 나선 김선우는 실수를 연발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죠. 아무 생각 없이 코스를 돌고 온 것 같아 허탈했어요.” 승마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다는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심하게 자책했지만 얼마 뒤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최고의 말 천마를 타고 나온 중국의 왕웨이가 실권을 당한 것이다. 천마는 왕웨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장애물 넘기를 4차례나 거부했다. 또 다른 말 ‘올가스’도 중국의 량완샤를 2차례나 360도 회전시키며 떨어뜨렸고 점수는 0점 처리가 됐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중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변수가 많은 승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안장 대신 중국에서 가져온 안장을 쓰기도 했다. 실력은 최고였지만 실수는 심리에서 비롯됐다. 왕커 중국 대표팀 감독은 “말들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선두를 유지하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패인을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은 여유가 있었다. 승마에서 300점 만점을 받은 최민지는 경기를 마친 뒤 말을 토닥거리며 “잘했다”고 했다.
한국이 펜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중국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성진 대표팀 감독은 “펜싱에서 중국과 보통 100점 이상 차이가 났는데 오늘은 60점밖에 안 났다. 중국이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에 많이 긴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말에서 떨어져 입안을 25바늘, 코밑을 5바늘이나 꿰매고도 펜싱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정민아의 공이 컸다. “칼이 마스크를 찌르면 너무 아팠어요. 흉터 제거 수술을 받는 김에 얼굴도 싹 고칠까요?” 실밥을 푼 지 사흘밖에 안 된 정민아는 코밑에 선명하게 남은 흉터를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인천/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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