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코리 “조코비치 꺾고 자신감 생겨”
아시아 선수들한테 세계 테니스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1968년 프로 테니스가 시작된 뒤 50년 넘게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든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1990년대 테니스 코트에 ‘황색 돌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창(42)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지만 그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니시코리 게이(25·사진·일본)는 아시아 테니스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수다. 그는 3일(한국시각) 발표된 남자프로테니스(ATP) 랭킹에서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처음 세계 5위에 올랐다. 지난 5월 ‘톱 10’에 진입한 뒤 6개월 만에 ‘톱 5’까지 오르며 아시아 남자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그의 앞에는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비롯해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 스탄 바브링카(스위스)밖에 없다. 지난 5월엔 조코비치를 꺾고 유에스(US) 오픈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5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니시코리는 12살이던 2001년 일본 오렌지볼선수권(14살 이하) 준우승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 남자프로테니스 투어에 데뷔해 7승을 거뒀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키 178㎝, 몸무게 68㎏의 신체 조건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견줘 불리해 보였다. 2010년부터 앤드리 애거시(미국), 앤디 머리(영국) 등을 지도한 브래드 길버트 코치를 영입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이듬해 코치를 마이클 창으로 교체하면서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비슷한 체형과 신체조건을 지닌 창이 현역 시절 34개 투어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던 기술과 전술을 니시코리한테 알려준 게 주효했다.
2011년 유에스 클레이코트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스위스 인도어 바젤 준우승(2011년), 일본오픈 우승(2012년), 유에스 내셔널 인도어 챔피언십 우승(2013년), 유에스 오픈 준우승(2014년) 등 해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올 시즌엔 조코비치와 페더러 등 세계 1~2위 선수를 잇따라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점프를 활용한 높은 타점의 오른손 스트로크와 엄청난 속도의 양손 백핸드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니시코리는 9일 개막하는 에이티피 파이널스 대회에 출전한다. 세계 테니스 ‘왕중왕전’에 해당하는 이 대회에 아시아 선수가 출전하는 것도 니시코리가 처음이다. 니시코리는 4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전미 오픈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게 이겼던 게 자신감을 갖게 했다. 좋은 경기를 하면 최고 수준의 선수한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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