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유도 48㎏ 은메달리스트 정보경이 올림픽을 마치고 지인들과 함께 한 바다낚시에서 주꾸미를 잡아 올리는 모습. 정보경은 낚시 마니아로 유명하다. 정보경 선수 제공
사진과 낚시 그리고 추리. 여자 유도의 ‘작은 거인’ 48㎏급 정보경(25·안산시청)이 애착을 갖고 있는 취미들이다. 세 취미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순간을 낚아채야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것, 찰나가 주는 짜릿함을 만끽하기 위해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준 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중 최단신(153㎝)이었던 정보경은 작은 체구를 이용한 날렵한 몸놀림으로 상대 진영으로 번개같이 날아들어 상대의 유도복을 낚아챘다. 이어 자신의 몸무게의 3배를 메치는 근력으로 상대를 매트에 내리꽂았다. 그렇게 정보경은 자신의 첫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한국이 리우올림픽에서 거둔 첫번째 메달이자 한국 여자 유도가 지난 20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경기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확인한 정보경의 손가락은 적잖이 휘어져 있었다. 25살 여성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12년간, 이 한순간을 위해 정보경은 수없이 상대의 유도복을 잡아챘다. 정보경은 “일단 상대 유도복을 잡아야 기술을 걸 수 있으니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으려고 꽉 잡았다. 상대도 그런 내 손을 떼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휘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면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각종 매체의 섭외 요청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정보경을 지난 9일 경기도 안산시청 유도장에서 만났다. 정보경은 밀려드는 환영행사에도 짬을 내 몸을 만들고 있었다. “서러운 것보다는 부러운 게 컸죠.” 왜 아니었을까. 그가 리우에 오기 전, 그를 주목한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가 은메달을 획득한 직후 올림픽 현장 취재기자단에서는 “정보경이 어떤 선수야?”라는 말들이 오갈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을 때 정보경은 속으로 ‘대회가 끝나면 남자 유도선수들을 비추던 카메라가 나를 향하도록 하겠다’고 되뇌었다고 했다. 앳된 얼굴과는 다른 악바리 같은 모습이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 아닌가요?”라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정보경은 “인정욕구가 없다면 운동선수 그만둬야죠”라며 웃어 보였다. 정보경의 꿈은 건물주. 정보경은 “올림픽을 포함해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식 하나 없는 모습이다. 그가 건물주가 되고 싶은 건 자라온 환경 때문. 정보경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도를 했다. 부모님께 꼭 집을 마련해드리고 싶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정보경에겐 숨기고 싶은 것도 그렇다고 과장하고 싶은 것도 없어 보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에 대한 평가엔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답답한 게 제일 싫어서 목티도 안 입었고 치마도 없었다”며 “머리가 짧았고 항상 널널한 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했다. 편한 복장으로 흘러간 노래를 듣는 것 또한 정보경의 취미 중 하나. “최신 음악도 좋지만 이승철, 박상민 같은 베테랑 가수들의 음악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는 정보경은 또 “언젠가 운동을 그만두면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고도 했다.
태릉선수촌과 리우올림픽 현지에서 정보경은 <용의자 엑스(X)의 헌신> <백야행> <악의>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독파했다. 정보경은 “책을 읽으면서 사건 현장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즐거움이 컸다”며 “어려서부터 추리 소설을 자주 봤다”고 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은메달을 따낸 데 이러한 독서가 도움이 됐을까. 정보경은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겠지만 전략을 짜서 상대를 공략하고 문제를 푸는 대목은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정보경은 작지만 단단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 도중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여전히 정말 신기하다”며 “내가 올림픽에서 뭔가 하고 오긴 한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보경에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순수함’ 혹은 ‘천진난만함’이 남아 있었다. 정보경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더 궁금해졌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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