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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는 허무했지만, 류한수는 다시 4년을 시작했다

등록 2016-09-22 17:07수정 2016-09-22 20:29

올림픽 레슬링 오심 논란 뒤 눈물
부모님도 안 만나고 운동 재개

“4년간 사력 다했는데 이렇게 끝나
그 경기서 심판 눈 보고
내게 유리하지 않을 거라 느꼈다
메달 못 딸 수도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 허탈”
남자 레슬링 국가대표 류한수가 지난 8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하고 있다. 류한수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권승록 기자
남자 레슬링 국가대표 류한수가 지난 8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하고 있다. 류한수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권승록 기자
남자 레슬링 국가대표 류한수(28·삼성생명)가 브라질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산 해운대 앞바다였다. 경성대 재학 시절부터 마음이 답답할 때면 찾던 장소다. 최정상급 레슬러가 되는 길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수반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류한수는 해운대 모래사장에 앉아 광활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류한수는 바다가 좋았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기운을 받아 10년이 넘는 무명 시절을 견뎌냈다. 하지만 고대하던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그는 메달을 얻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한 류한수는 여느 때처럼 해운대를 찾았다.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듯 지난달 24일 해운대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평일이라 인적도 드물었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류한수는 모래사장을 혼자 걷고 또 걸었다.

동갑내기 레슬러 김현우(28·삼성생명)와 함께 한국 남자 레슬링의 쌍두마차로 불리며 리우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류한수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해 메달을 따지 못했다. 2006년부터 국가대표로 뽑혔지만 국가대표 2진과 훈련파트너를 오갔을 뿐, 늘 스포트라이트 저편에서 설움을 삼켜야 했던 류한수에겐 이번 올림픽이 더 각별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가를 다 발휘하지 못했다.

류한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서울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과 취재진으로 북적였던 태릉선수촌도 한산해진 모습이었다. 리우올림픽 개막 잔여일을 표시하던 전광판도 불이 꺼졌다. 태릉선수촌 웨이트장에선 류한수만이 홀로 몸을 만들고 있었다. “4일에 태릉에 입촌해 운동을 시작했는데 몸 이곳저곳이 많이 당긴다”면서 웃으며 기자와 인사를 나눈 류한수는 “메달도 따지 못한 내게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멋쩍어했다.

올림픽 현장 취재기자단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고 나온 류한수를 향해 차마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한눈에 봐도 ‘상남자’인 류한수가 얼굴을 감싸쥔 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류한수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복도 끝에서 벽에 기대 주저앉은 뒤 한참을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말없이 당시를 회상하던 류한수는 ‘허무함’이란 단어로 당시의 심경을 요약했다. 그는 “이 한순간을 위해 4년간 사력을 다했는데 정말 이렇게 끝나나 싶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메달을 따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올림픽을 마무리한다는 게 너무 허탈했다”고 했다. 류한수는 8강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파르테르 찬스에서 상대가 몸을 비틀며 류한수의 손을 잡는 반칙을 범했지만 심판은 이를 용인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명백한 반칙이라고 말했던 장면이었다.

경기장에서 류한수는 심판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상대 선수의 손을 가리켰지만 심판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류한수는 “그때 직감했다”며 “심판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절대 나에게 유리한 경기는 아닐 거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류한수는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싶다”며 “내가 경기력이 월등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번 올림픽에선 김현우 역시 러시아 선수를 맞아 편파판정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현재 세계레슬링연맹(UWW)은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류한수는 귀국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부모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 얼굴을 차마 볼 용기가 없어 전화만 드렸다”고 했다. 나이를 고려하면 2020 도쿄올림픽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류한수는 “이번 대회에서 난도 높은 기술을 선보이지 못했다. 도쿄에선 ‘늪 레슬링’에서 진화한 기술 레슬링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4년도 짧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류한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리우올림픽 100일을 앞둔 지난 4월25일 아침 7시30분이었다. 태릉선수촌 입촌 선수 전원이 참가하는 새벽 훈련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훈련장을 빠져나오던 선수가 류한수였다.

태릉/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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