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패럴림픽 TT4 탁구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정길(왼쪽)-김영건 짝이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로의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김영건은 “정길이는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였다”고 했고, 김정길은 “영건이 형은 처음부터 차분하고 말수가 적었다”며 웃어 보였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 유무를 불문하고 한국 남자탁구대표팀엔 공통점이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2016 리우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탁구 남자대표팀 김영건(33·서울시청)-김정길(31·광주시청) 짝. 둘은 남자탁구대표팀의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이상수(26·삼성생명) 짝과의 인터뷰(<한겨레> 2016년 7월7일치 22면 “성격 차 커도 찰떡…만리장성 좀 비켜줄래”)를 떠올리게 했다. 김영건은 정영식과, 김정길은 이상수와 닮아 있었다. 외모가 아니라 성격과 탁구 스타일이 그랬다.
김영건은 차분한 전략가 스타일이다. 그는 “상대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한 뒤 시합에 임한다”고 했다.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나 랠리와 볼 컨트롤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리우올림픽에서 수비형 전략 탁구로 세계 최강 마룽 등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정영식과 유사한 스타일이다. 반면, 김정길은 공격 탁구를 추구한다. 그는 “점수를 줄 때 주더라도 화끈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편”이라며 “영건이 형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이는 강한 압박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이상수와 비슷한 면모다.
김영건과 김정길은 마주 보고 웃으면서 “우린 스타일이 달라서 오히려 상대에 맞게 유연하게 전략을 짤 수 있었다”며 금메달 획득의 비결을 털어놨다. 김영건-김정길 짝은 최고참인 최일상(41)과 함께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리우패럴림픽 TT4(4등급) 탁구 남자단체전에서 대만을 2-1로 물리치고 한국선수단에 5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1복식 2단식으로 치러진 결승에서 김영건-김정길 짝이 복식 첫 경기를, 최일상이 단식에서 승리했다. 개인전에서의 부진을 물론, 2012 런던패럴림픽 남자단체전 은메달의 한도 풀어낸 금메달이었다.
둘은 10년이 넘는 탁구 지기다. 국내 대회에서는 최일상과 함께 늘 4강에 오른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 합숙 과정에서도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전략을 구상했다. 그렇다고 성격까지 같을 수는 없는 법. 동생 김정길은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형 김영건은 에너지를 내면에 담아두고 이를 터뜨릴 기회를 엿보는 선수였다.
19살이던 2004년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김정길의 꿈은 자동차 엔지니어였다. 기계 덕후인 그는 지금도 여유 시간과 돈이 생기면 대부분을 자동차에 투자한다. 운전도 즐긴다. 자동차학교를 다녔던 그는 “빠른 속도는 날 집중하게 해 짜릿하다”고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김정길은 “체격이 좋아 배구 선수 권유도 받았지만 부상 이후 우연히 접한 탁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는 사랑에도 적극적이다. 김정길은 자신의 머리를 다듬어주던 미용 디자이너에게 먼저 다가가 인연을 맺었고 결국 그녀와 내년 봄에 결혼하기로 했다.
맞은편에서 김정길의 취미와 연애관 그리고 생활방식을 곰곰 듣고 있던 김영건은 “나도 저런 걸 좀 배워야 하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나는 안정감과 승차감이 좋은 차를 선호한다”며 웃었다. 김영건은 중학교 1학년 겨울 기말고사를 준비하다 척수염 진단을 받았다. 3년을 방황한 끝에 탁구채를 잡았다. 이후 2004 아테네패럴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8 베이징패럴림픽 이후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당시를 자신의 탁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은 그는 “베이징 때 8강에서 떨어지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만해서 크게 얻어맞았다”고 했다. 패럴림픽 2관왕과 4년 뒤 패럴림픽 8강 탈락은 김영건이 감당해내기 힘든 낙폭이었다. 그는 “탁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고 했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인 김영건과 공부라는 말에는 고개를 저으며 “탁구와 운전으로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김정길.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두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지만 그 차이를 존중하는 온기가 두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인터뷰였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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