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케이비오(KBO)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한 두산의 김태형 감독(왼쪽)과 포수 양의지가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포수(捕手·Catcher). ‘잡을 포’(捕)와 ‘Catch’(잡다)를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야구에서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잡는 사람이다. 150㎞대에 이르는 강속구와 자유자재로 춤을 추는 변화구를 잘 받아내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공을 잘 잡아내는 데서 그친다면 일류 포수라 하기 어렵다. 2016 케이비오(KBO)리그 통합우승을 달성한 두산의 김태형(49) 감독과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양의지(29)는 지난 11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포수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포수 출신이고 양의지는 두산의 ‘안방마님’이자 한국 최고의 포수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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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할 포’(包) 김태형 감독은 포수의 제1덕목으로 ‘희생’을 언급했다. “포수는 기본 바탕에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 포수가 본인 기분대로 하면 무조건 진다”고 말했다. 양의지 역시 “포수는 일단 참아야 한다. 선수들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투수와 야수들을 품어 안으면서 경기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포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은 돌보지 못할 때가 많다. 포수들이 잔부상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김 감독은 자신의 선수 시절을 돌이켜보더니 “나는 가끔은 대놓고 말했다.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의 투수와 신경전도 벌였다”며 “이젠 그런 시대는 아니다”라면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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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찰 포’(飽) 희생정신 못지않게 김 감독이 강조한 포수의 미덕은 ‘센스’(감각)다. 김 감독은 “쉽게 말해 포수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 특히 기억력”이라고 했다. 상대 타자를 잡기 위해서는 포수는 타자에 대한 강점과 약점뿐만 아니라 습관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양의지도 “기억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며 “타순이 한 번 돌면 감이 온다. 그것이 누적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대 9개 구단 타자들의 기록과 유형은 물론 선발투수와의 전적까지, 경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머리에 가득 담고 시즌에 임한다는 것. 그래야 마운드에서 투수들이 포수의 사인을 믿고 던질 수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나와 모두 1승씩 선발승을 챙긴 두산의 막강 선발진 ‘판타스틱 4’(더스틴 니퍼트-장원준-마이클 보우덴-유희관)는 경기 뒤 모두 “양의지의 리드가 너무나 훌륭해 잘 던질 수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산 투수들이 엔씨(NC)와의 2016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내준 점수는 단 2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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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포’(砲) 양의지가 2016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에 오른 데는 타선에서의 활약도 큰 역할을 했다. 올해 양의지의 엔씨전 성적은 0.082(49타수 4안타). 올 시즌 홈런 22개, 타율 0.319로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엔씨만 만나면 침묵했다. 그러던 양의지는 2차전에선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2차전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더니 4차전에서도 선제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다. 양의지의 이번 한국시리즈 성적은 16타수 7안타 1홈런 4타점. 타율은 무려 0.438이다. ‘안방마님’으로 홈플레이트를 지키며 경기를 조율하는 것을 넘어 팀 공격을 이끄는 선봉장 역할까지 했다.
그러니 김태형 감독은 양의지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두산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투수들로부터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두산의 주전 포수는 ‘양의지’라로 공표했다”고 밝혔다. 양의지도 “감독님이 믿어주셔서 더 집중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선발투수에 따라 포수에 변화를 주는 일부 구단과는 다른 모습이다.
선택은 각 구단 감독의 권한이지만 결과적으로 양의지는 감독의 무한 신뢰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내며 두산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선수단을 품어 안을 줄 아는 ‘포수’(包手)였고, 지략으로 꽉 찬 ‘포수’(飽手)였으며, 한 방을 가진 공격형 ‘포수’(砲手)이기도 했다. 김 감독이 “더 이상 터치할 것이 없는 포수”라고 인정하는 이유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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