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은 대표팀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점점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회였다. 대중들은 지더라도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 선수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이기더라도 떳떳하지 못한 승리였을 때는 따끔한 질책을 가했다. 오로지 승리만을 외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사진은 태권도 대표팀 이대훈(오른쪽)이 8강전에서 요르단 선수에게 패한 뒤 승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리우올림픽 기대감으로 시작된 2016년.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체육계가 발칵 뒤집힌 상태에서 2017년을 맞게 됐다. 알파고의 충격과 리우올림픽의 눈물, 그리고 승부조작 파문과 최순실 게이트가 연이어 터진 2016년을 <한겨레> 스포츠팀 기자들의 ‘코멘터리’(설명)로 돌아본다.
최순실 게이트에 쑥대밭 된 체육계
최순실씨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앞세워 스포츠계 이권에 개입했다. 체육 정책마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를 위해 디자인됐다. 이 과정에서 반대파는 ‘나쁜 사람’으로 찍혔고, 체육인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선수였다는 사실 하나로 스포츠계가 카오스에 빠져들었다. 최순실 모녀의 농단에 스포츠계는 무지했고 무심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내년에는 과연 가능할까.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 벌써부터 걱정이다.”(김양희)
“위기는 기회다. 이번엔 한국 체육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문체부와 교육부가 체육의 가치를 근본부터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김창금)
“사악하고 부도덕한 권력에 의해 스포츠계가 완전 농락당했다. ‘스포츠 대통령’ 소리를 듣던 대학교수 출신 문체부 차관이라는 사람의 추락은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니었을까? 쇠고랑 찬 그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김경무)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대결’
이세돌 9단(오른쪽)이 지난 3월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직관’이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바둑조차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의 대전에서 4 대 1로 승리했다. 애초 이 9단의 완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는 바둑계를 넘어 과학계 전반에도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 등 구글 딥마인드의 과학자 그룹이 무섭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박정환이, 아니면 중국의 커제라도 알파고를 이겼으면 하는 바람은 꿈인가.”(김창금)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계는 위기에 빠졌다. 프로 기사들은 이제 ‘기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대중 속으로 들어가 바둑의 대중화에 앞장서야 한다. 다소 슬픈 사실이지만, 인공지능과의 승부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권승록)
“스포츠와 오락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람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진다. 자존심과 아집의 경계 또한 종이 한 장 차이다. 쉽지 않겠지만 앞서가는 바둑계를 기대해본다.”(이찬영)
“입신의 경지라는 바둑 9단이 인공지능에 쩔쩔매는 모습을 봤다. 아무리 세계 최고수라 할지라도 다 들여다볼 수 없는 바둑 게임의 무한성을 느꼈다.”(김경무)
체육단체 통합과 이기흥 체육회장 당선
초대 통합체육회장에 당선된 이기흥 회장. 연합뉴스
엘리트 스포츠를 담당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다루는 국민생활체육회가 ‘대한체육회’로 통합됐다. 지난 10월 열린 통합체육회장 선거에서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초대 통합체육회장에 당선되면서 2021년 2월까지 한국 체육을 이끌게 됐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주도로 체육단체가 통합됐지만, 아직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일부 단체를 들여다보면 양쪽의 불협화음도 여전하다. 김종 차관 시절 체육의 자율성이 크게 침해됐다고 하는데, 체육회나 경기단체도 좀더 경쟁력 있고 선진적인 단체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김경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통합 방식을 놓고 수많은 논란과 갈등을 불렀다. 체육계를 농단했던 김종 전 차관이 통합을 주도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이기흥 체육회장 체제는 안팎으로 어수선한 체육계를 하나로 묶어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이찬영)
“대한체육회의 위상은 권력에 책잡힌 전임 김정행 회장 시절 급락했다. 정부와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새 출발한 이기흥 회장 체제의 대한체육회가 한국 체육의 ‘백년대계’를 어떻게 구상할지 궁금하다.”(김창금)
프로야구 승부조작
‘아는 형님’의 유혹으로 승부조작을 한 전 엔씨 다이노스 이태양. 연합뉴스
프로야구는 올해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800만 관중을 넘겼으나 4년 만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이태양(전 NC 다이노스)과 유창식(KIA 타이거즈)은 승부조작 가담 혐의를 인정했다. 더불어 엔씨 구단은 선수들의 승부조작 가담 의혹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12년에 승부조작 사건을 겪고도 프로야구 선수들이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소양교육 문제가 제기되지만 환경만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욱 강력한 제재 없이는 불법 브로커와 연계된 승부조작이 계속 터질 것이다.”(김양희)
“선수 개인의 일탈을 모두 제어할 수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승부조작은 팬들에 대한 배신 행위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제재로 관용 따윈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줄 필요는 있다.”(이찬영)
남미 첫 올림픽, 리우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금 9개, 은 3개, 동 9개로 208개 출전국 중 8위를 기록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4개 대회 연속 톱 10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으나 애초 목표였던 금 10개로 종합순위 10위 안에 드는 ‘10-10’은 실패했다. 양궁 전 종목 석권, 116년 만의 여자골프 금메달 박인비, 진종오 사격 3연패 등의 역사를 남겼다.
“리우올림픽 종합 8위에 올랐지만 금메달은 9개에 그쳤다. 올림픽은 성적이 전부가 아니지만 성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지만 비인기 종목들은 자신들을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변환기를 맞이한 한국 체육계가 ‘성적과 내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이찬영)
“양궁 전 종목 석권은 대표팀 선수 및 코칭스태프 선발 과정에서 양궁협회가 보여준 공정함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한국 양궁의 독주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권승록)
여자농구 첼시 리 ‘문서 위조’ 파문
첼시 리(전 KEB하나은행).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제공
여자농구 부천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2015~2016 시즌 신인왕 등 6관왕을 차지한 첼시 리의 활약에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첼시 리는 할머니의 국적이 한국으로 알려져 외국인 선수가 아닌 국내 선수 자격으로 뛰었으나 지난 6월 검찰은 첼시 리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과 법무부에 제출한 자료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귀 막고 눈 막은 연맹은 책임질 줄 모른다. 그저 잊히기만을 바란다면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김양희)
“‘첼시 리 혈통사기극’의 최종 책임자 ‘신산’(神算) 신선우 연맹 총재는 결국 올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총재 부임 전후 연맹에서 발생한 ‘인사전횡’과 ‘광고 몰아주기’ 등이 연달아 보도됐지만 모르쇠로만 일관하고 있다. 선수·지도자·행정가로 모두 성공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는 책임있는 조처를 보여야 했다. 연맹 수뇌부의 무책임에 농구팬들의 마음만 되레 ‘신산’(辛酸·힘들고 고통스럽다는 뜻)해진 한 해였다.”(권승록)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기사회생
지난 10월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6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는 무패행진을 달렸지만 9월 시작된 최종 3차 예선에선 한때 A조 3위까지 밀렸다. 10월15일 우즈베키스탄전 역전승(2-1)이 없었다면 기술위원장과 함께 하차했을 것이다.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직행 티켓을 따기 위한 험로가 앞에 놓였다.
“슈틸리케호는 중국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다 결국 3-2로 끝내면서 험로를 걸어왔다. 이란 원정 0-1 패배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잠시 주춤하던 중동세의 부활로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다. 내년엔 분발을 기대해본다.”(김경무)
“신의 경지에 올랐다며 ‘갓틸리케’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었고, 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다. 남은 5차례 경기에 태극호와 슈틸리케의 운명이 걸렸다.”(김창금)
두산 베어스, 21년 만의 통합우승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야구단 사진 제공
두산은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 장원준, 유희관 등으로 이뤄진 강력한 선발진 ‘판타스틱 4’를 앞세워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 및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두산이 정규리그 동안 거둔 93승(50패1무)은 케이비오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이다.
“투타 완벽한 조화에 의한 완벽한 우승이었다. 우승을 위해 몇년간 준비해온 게 결실을 맺은 듯하다. 앞으로 몇년 동안은 프로야구에 두산 왕조가 펼쳐지지 않을까. 벌써부터 다른 구단들이 ‘두산 따라 하기’ 중이다.”(김양희)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영화 <내부자들> 명대사 중 하나다. 두산이 우승을 거둔 직후 김태형 감독과 양의지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대사다. 어조와 맥락은 영화와 물론 달랐지만 뜻은 통한다고 생각했다. 두산의 통합우승은 이 ‘영리한 곰’들이 있어 가능했다. 우연히도, 두 사람은 모두 포수 출신이다.”(권승록)
전북 현대, 10년 만에 아시아축구 정상 탈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서 있는 전북 현대 김신욱(왼쪽)과 이동국. 연합뉴스
세계적인 클럽을 지향하는 전북 현대가 10년 만에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재정복했다. K리그에서는 시즌 33경기 무패행진 신기록을 세웠다. 대륙별 챔피언이 참가하는 클럽월드컵에서 클럽 아메리카에 져 4강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화려했던 한 해를 마감했다.
“여러모로 K리그가 어려운 가운데 전북 현대는 FC서울과 함께 선수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아시아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팀이 됐다. 한국에서는 상상 못할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국과 중동의 강팀들을 물리치고, 전북이 아시아 클럽축구 정상을 탈환한 것은 그래서 더욱 뜻깊다고 하겠다.”(김경무)
“클럽월드컵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대결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6강 싸움에서 열심히 뛰는 K리그를 알렸고, 5~6위 결정전 대량 득점으로 크게 웃었다.”(김창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