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스포츠계에는 얼굴을 찌푸리게 한 인물도, 그저 바라만 봐도 미소를 짓게 하는 인물도 있었다. <한겨레> 스포츠팀이 뽑은 올해의 스포츠계 인물들을 ‘코멘터리’(설명)와 함께 만나본다.
■ 김종: 체육계를 ‘최순실 사업장’으로 만들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였던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은 2013년 10월 부임 이후 장관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다. 사실상 최순실의 하수인이었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승마 선수로 성공시키기 위해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완장의 맛에 취했다. 체육계는 최순실 이권을 위한 사업장이 됐다. 화무십일홍. 체육계 대통령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가면은 최순실의 ‘수행비서’라는 증언에 의해 발가벗겨졌다.”(김창금)
“체육계 대통령이 최순실과 정유라를 위해서 움직이는 비서 같은 존재였다니…. 잘못한 일이 더 많지만 분명 잘한 일도 있었을 텐데 그게 다 ‘올스톱’ 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스포츠 시계는 그로 인해 멈춰버렸다.”(김양희)
유승민이 2016 리우올림픽 당시 선수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유승민: IOC와 평창 사이 가교 역할 꼭 해내길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은 2016 리우올림픽 현장에서 선수단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발이 닳도록 현장을 누비며 자신이 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돼야 하는지 설명했다. 유승민은 그렇게 한국인 선수 사상 두번째로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선배들을 물리치며 ‘탁구신동’으로 주목을 끌더니, 2004 아테네올림픽 때 남자단식 결승에서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로 중국의 왕하오를 무너뜨리고 ‘올리브관’을 쓴 것은, 한국 탁구사 최대의 쾌거로 평가받는다. 올림픽 금메달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이뤄낸 그의 노력과 열정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다.”(김경무)
“국제스포츠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많이 위축됐다. 한때 3명이었던 아이오시 위원은 현재 이건희 회장뿐이고, 그는 현재 활동이 불가능하다. 누구보다도 친화력을 갖춘 유승민 선수위원의 활약을 기대해본다.”(이찬영)
“그가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이오시와 평창올림픽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 개인의 영광을 떠나 선수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 이 같은 다짐이 ‘평창’까지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권승록)
펜싱 에페 박상영이 2016 리우올림픽에서 극적인 금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박상영: “그냥 즐겼어요” 진정한 올림피언 출현
세계 3위를 맞닥뜨린 21살의 검객, 박상영은 10-14로 뒤지던 그때 혼자서 “할 수 있다”를 읊조렸다. 그리고 전신 공격이 가능하고 동시 타격하면 같이 점수가 올라가는 에페 종목에서 기적같이 내리 5점을 따내며 리우올림픽 한국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그냥 즐겼어요’라고 말하는 발랄함은 그동안 한국 선수들한테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박상영의 등장은 올림픽을 즐기는 진정한 올림피언의 출현을 알린다.”(김창금)
“펜싱 에페 종목에서 경기 후반 4점 차를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박상영은 ‘할 수 있다’는 굳은 의지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간절한 순간 불가능은 가능이 된다.”(김양희)
박인비가 2016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기뻐하고 있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박인비: 리우서 ‘골든 슬램’…골프 인생 화룡점정
박인비(28)는 왼손 엄지 부상을 안고도 세계 2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 5타 차 앞서며 116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여자골프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6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하고 7월 유에스(US)여자오픈과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연달아 결장하고도 8월에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세리 키즈’로 올해 은퇴한 박세리가 감독으로 나섰기에 더 특별한 금메달이 됐다.
“지카 바이러스, 치안 등을 이유로 남자골프 세계랭킹 1~4위 선수들이 모두 리우행을 기피한 가운데, 박인비는 ‘그런 것은 내 컨디션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작은 문제’라며 리우에 갔고 자신의 골프 인생에 ‘화룡점정’을 이뤘다. ‘골든 슬램’(4대 메이저 대회 우승+올림픽 금메달)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위업이다. ‘부상 등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그의 불굴의 도전정신은 후배들이 본받아야 한다.”(김경무)
“솔직히 박인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부상 때문에 올림픽 출전 자체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인비는 출전했고 한국 여자 골프의 힘을 보여줬다.”(김양희)
■ 진종오: ‘강철심장’으로 이룬 올림픽 사격 3연패
한때 6.6점을 쏘며 6위까지 떨어졌지만 마지막 2발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진종오는 2016 리우올림픽에서 사격 역사상 전무후무한 올림픽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국제사격연맹은 지난 2일 남자 종목 3개를 폐지하고 혼성 종목 3개를 신설하는 내용의 도쿄올림픽 종목 개편안을 마련했다. 권총 50m 종목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돼 진종오의 4연패 도전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분야에서 12년 동안 세계 정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올림픽 3연패는 실력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강철 심장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그의 도전을 함께 지켜보자.”(이찬영)
“올림픽 4연패가 아니면 어떤가. 진종오는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타이틀이 아니라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사격’의 지속가능성 여부일 것이다.”(권승록)
12월 열린 국제수영연맹 쇼트코스 세계선수권에서 환호하고 있는 박태환. AP연합뉴스
■ 박태환: 약물 낙인도 마린보이 열정은 못 막아
2014년 말 도핑 양성 반응으로 대표선수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박태환은 우여곡절 끝에 리우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전 종목 예선탈락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전국체전, 아시아선수권에서 도드라진 모습을 보였고 12월 열린 국제수영연맹 쇼트코스 세계선수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면서 대반전에 성공했다.
“올림픽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은 이해하지만 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국체전과 국제대회에서 작성한 기록들을 보면서 다시 기대를 갖게 한다. 박태환의 명예회복은 이뤄질 수 있을까.”(이찬영)
“올림픽에 가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맞장 뜬 다윗. 리우에서는 실패했지만, 쇼트코스 세계대회를 통해 재기한 수영 천재. 도핑 낙인도 그 열정엔 두 손 들었다.”(김창금)
“열정은 인정한다. 하지만 몰랐다 하더라도 약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주홍글씨다.”(김양희)
“2008 베이징올림픽 때 남자 자유형 200m에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도 긴장하게 만든 박태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명예롭게 은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김경무)
■ 이승엽: 당당한 은퇴 향해…식지 않은 홈런포
한국에서 14시즌(441홈런), 일본에서 8시즌(159홈런)을 뛰었다. 22시즌을 뛴 ‘국민타자’ 이승엽(40·삼성)은 지난 9월14일 대구 안방에서 마침내 한·일 통산 600홈런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써냈다. 이승엽은 지난 12일 현역으로는 처음 일구대상도 받았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 선정 배경이었다. 그는 내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재능만으로 허락될 기록은 아닐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성실함이 낳은 결실이다. 그는 최근 자주, 홈런을 친 뒤 고개를 숙인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모두 경험했던 최고의 선수가 동료에게 보내는 예우에 팬들도 고개를 숙일 때가 많다.”(권승록)
“2년 뒤 은퇴를 선언하고 첫 시즌이었다. 멋진 은퇴 시즌을 위해 이승엽은 올해 더 많이 훈련했고 타석에서 집중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은퇴 시즌을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라이언킹을 볼 수 있는 시간은 1년밖에 없다.”(김양희)
“경기장에서는 물론, 언론과 만나서도 늘 겸손하고 친화적인 ‘라이언킹’. 스포츠 기자로서 만나본 최고의 스타가 아닌가 한다.”(김경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