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오후 2시 전국컬링대회가 열린 경북의성컬링센터. 얼음판 위에 올라선 송현고(경기도 의정부) 김수진(리드)이 둘레 91㎝, 무게 19㎏, 높이 12㎝가량의 스톤을 잡고 투구 자세를 취했다. 양옆에는 브러시를 든 양태이(세컨드)와 김혜린(서드)이 자리했다. 셋의 눈이 동시에 전방 50m 표적(하우스)을 향했다. 표적 뒤엔 주장 김민지(스킵)가 스톤의 최종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김수진이 신중히 스톤을 출발시켰다. 그러자 세컨드와 서드가 브러시로 쉴 새 없이 빙판의 얼음돌기를 닦아냈다. 얼음판을 매끄럽게 만들어야 스톤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 “일곱, 여덟, 아홉.” 스톤의 움직임에 따라 숫자를 세는 둘의 목소리가 장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컬링센터 내부 체감온도는 영상 3도. 긴팔을 입고 경기를 시작한 양태이가 외투를 벗어던졌다. 양태이는 “비질을 하다 보면 온몸에서 열이 난다”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했다”고 했다. 유리문 너머 관중석에선 “송현고 그만 좀 이겨라!”라는 애정 어린 핀잔도 새어나왔다.
컬링은 2014 소치겨울올림픽부터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컬링은 8위를 기록하며 2018 평창겨울올림픽 메달 전망을 밝게 했다. 물론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낯선 종목이지만 소치올림픽 이후 한국 컬링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 상승세의 한 축이 바로 올해 18살 동갑내기 ‘고3’ 주전 4명으로 구성된 송현고다. 송현고는 소치올림픽 대표였던 경기도청을 지난해 4월 꺾은 데 이어 11월엔 캐나다 월드투어 허브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선수를 개별적으로 뽑아 팀을 구성해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다른 종목과 달리 컬링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한 팀이 대표 자격을 얻는다. 이 때문에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송현고 역시 이 부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송현고팀 4명 가운데 3명은 2012년부터 5년 동안 컬링을 함께해왔다. 김혜린은 “소통이 중요한 종목이라 동료들 표정과 제스처를 유심히 보게 된다”며 “해외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여러번 같이 돌려 보면서 새로운 전략을 짜곤 한다”고 했다. 양태이는 “두뇌싸움이 치열한 종목이라 빙판에서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며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게 컬링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이 지난해 1월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컬링 챔피언스 투어에 참가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정 코치,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 경상북도컬링협회 제공
이날 만난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세계 13위) 역시 평창올림픽을 벼르고 있다. 올림픽 메달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소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결승전에서 경기도청에 패해 티브이로만 올림픽을 지켜봐야 했다. ‘절치부심’한 경북체육회는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2016~2017 시즌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고, 11월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파죽지세’ 경북체육회 여자컬링팀이 경기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팀 킴’(TEAM KIM)이다. 컬링에선 스킵(김은정·27)의 성을 따 팀 이름을 정한다. 비공식 명칭은 ‘5김(金) 시스터스(Sisters·자매)’. 주장을 비롯해 김영미(리드·26), 김선영(세컨드·24), 김경애(서드·23), 김초희(후보·21)까지 선수 5명이 모두 의성 출신 김씨다. 실제로 김영미와 김경애는 3살 터울 자매다. 해외 중계진이 ‘팀 킴’ 중계에 애를 먹는 이유다. 세계 대회에 나가면 선수 소개 책자에 자매의 사진이 뒤바뀌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 컬링 1세대이자 컬링 경력 20년차 김민정 ‘팀 킴’ 코치는 “의성에서 10년을 넘게 함께해온 팀이다 보니 팀워크가 탄탄한 게 장점”이라며 “기술적인 부분 외에 담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컬링은 양궁·사격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일종의 ‘과녁 스포츠’라는 점이 그렇다. 이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팀 킴’이 정기적으로 독서 토론을 여는 이유다. ‘빙판 위의 체스’라 불리는 종목답게 특히 바둑 관련 책이 테마 도서로 주로 선정된다고 한다. 김선영은 “독서로 터득한 원리를 컬링에 접목시켜 효과를 보고 있다”며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떠올리며 긍정적인 생각을 키워가고 있다”고 했다.
소치올림픽 국가대표였던 경기도청과 이에 도전하는 ‘팀 킴’, 그리고 선배들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송현고까지. 평창올림픽에 나갈 한국 컬링대표팀을 결정할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시기 미정)이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이 삼각편대의 성장으로 한국 컬링 첫 올림픽 메달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의성/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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