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 평창휴게소 인근에서 촬영된 사진. 산 중턱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란 홍보 문구가 배치돼 있다. ‘패럴림픽’은 문구에서 빠져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지난 1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는 문화체육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 각 부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애인이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 좀더 편리하게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최 도시(강릉, 평창, 정선)를 ‘무장애 관광도시’로 만들자는 업무 협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비장애인 올림픽뿐만 아니라 패럴림픽 또한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는 우리 사회의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온 일부 수장들은 행사 취지에 적합하지 않은 부주의한 언어 사용으로 눈총을 사기도 했다. 패럴림픽에 대한 빈곤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평창 대회를 총괄하는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올림픽’이란 말을 열 번 사용하는 동안 ‘패럴림픽’은 한 번 정도만 언급했고, 심재국 평창군수는 패럴림픽이 평창에서 개최됨에도 ‘패러올림픽’이라고 잘못 표현하기도 했다. 몸은 패럴림픽 행사에 있었지만 마음의 8할은 올림픽으로 기울어져 있던 셈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의 공문서. 직인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라 적혀 있을 뿐, 지금도 ‘패럴림픽’은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인사말뿐만이 아니다. 평창 대회를 1년밖에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도 패럴림픽에 대한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의 한 산자락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배치돼 있다. 이 문구만 보면 이곳에선 패럴림픽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평창조직위의 공문서 직인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라 적혀 있을 뿐 지금도 ‘패럴림픽’은 빠져 있다. 평창 대회와 관련한 현행 법령의 공식 명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지만 주무 수장들과 관계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평창 대회=평창올림픽’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장애인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관심도에서 차이가 있기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검토해보면 그간의 인식이 편향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관심도의 차이가 일반적인 예상보다 크지 않으며 되레 패럴림픽이 비장애인 올림픽보다 더 흥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은 총 880만장 중 95%가량이 판매됐다. 매진되진 않았다. 반면 런던패럴림픽은 270만장이 모두 동이 났다. 물론 규모 자체가 다르다 보니 전체 수량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매진 사례는 패럴림픽에 대한 영국인들의 지지와 열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런던 조직위는 결국 패럴림픽 표를 추가로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림픽은 총 610만장 중 90%가량이, 패럴림픽은 330만장 중 86%가 판매됐다. 브라질 패럴림픽 대표팀의 선전으로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올림픽 못지않게 뜨거웠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공기를 만드는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은 2020 도쿄 대회를 준비하면서 연신 ‘패럴림픽 퍼스트’를 외치고 있다. 일본의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의 보도 담당자들 역시 도쿄 대회를 언급할 때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라고 병기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다시금 떠올려야 할 것은 패럴림픽의 어원이다. 패럴림픽 공식 누리집에는 ‘패럴림픽’이 그리스어 ‘파라’(para: 나란히, 함께)와 ‘올림픽’의 합성어라고 풀이돼 있다. ‘올림픽’과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나란히 공존해가는 대회라는 뜻이다. 평창 대회를 이끄는 수장들이 권력 구도의 변화에 따라 교체를 거듭하더라도, 이와는 별개로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될 가치가 바로 패럴림픽의 어원에 녹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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