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그너스가 지난해 2월 루마니아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주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한스키협회 제공
“제 이름에 걸맞은 선수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최근 만난 한국 크로스컨트리 유망주 김마그너스(19)가 내놓은 이러한 다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의 이름 ‘마그너스’(Magnus)는 라틴어로 ‘위대하다’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우승을 넘어 역사에 남는 기록을 쓰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아 성인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한 신예지만 포부만큼은 그의 이름처럼 원대했다. 말총머리와 이국적인 외모로 취재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인터뷰 내내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배어든 솔직담백한 말솜씨로 주위를 사로잡았다.
1998년 부산에서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마그너스는 어려서부터 각종 운동을 두루 섭렵했다. 가장 먼저 축구에 재미를 붙인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잠시 활동하며 부산시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여기에 철인3종과 아이스하키도 병행했다. 그러다 2011년 7월 평창겨울올림픽의 한국 개최가 확정되자 그해 12월 크로스컨트리로 주종목을 변경했다. 이후 2년 만에 설상 강국 노르웨이에서 열린 주니어 크로스컨트리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축구를 통해 스피드를, 쇼트트랙에서 스케이팅 주법과 폭발력을, 철인3종에선 지구력과 근력을 익힐 수 있었다”며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해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스포츠계는 곧바로 김마그너스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다. 한국과 노르웨이의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그는 고심을 거듭하다 2015년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한국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나도 한국에 크로스컨트리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지원에 빼어난 성적으로 응답했다. 지난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청소년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며 한국 스키 선수 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 공로로 그는 2015~2016 시즌 대한스키협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고 생애 첫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광도 안았다.
지난달 20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국제크로스컨트리대회에 참가하고자 한국에 입국한 그는 고국 팬들 앞에서 첫선을 보인 이 대회에서 2010 밴쿠버겨울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니콜라이 모릴로프(러시아)를 꺾고 우승했다. 3일부터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테스트이벤트에 참가하고 그 뒤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김마그너스는 “평창 테스트이벤트는 우리나라 올림픽 시설에서 열리는 대회인데다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기 때문에 내 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아시안게임에선 금 1개를 포함해 메달 3개를 따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크로스컨트리 종목 특성상 평창보다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에 더 초점을 맞춰 훈련하고 있다. ‘설원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지구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의 지구력은 20대 후반에 정점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 역시 “평창에선 15위권 안에 진입한 뒤 베이징에서 일을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역할모델인 올레 비에른달렌(노르웨이)의 영상을 “쉬는 시간마다 돌려본다”고 했다. 올해로 43살인 비에른달렌은 올림픽에서 7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노르웨이의 스포츠 영웅이다. 극심한 체력소모가 요구되는 종목임에도 비에른달렌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3개의 메달을 따내는 등 계속해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마그너스는 “비에른달렌은 훈련 이외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본인이 타고 다니는 차에 훈련 스튜디오를 만들 정도”라며 “이러한 그의 자세를 배우려고 한다. 작은 호기심의 차이가 결과를 바꾼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비에른달렌처럼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라고도 했다.
“감기나 몸살로 훈련을 하지 못할 때가 제일 괴롭다”, “제자리걸음이 견디기 힘들다”는 김마그너스의 성장이 ‘설상 불모지’ 한국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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