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가 지난해 6월29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방문경기에서 동료들을 지켜보고 있다. 미네소타는 지난 4일(한국시각) 오른손 불펜 투수 맷 벨라일을 영입하면서 박병호를 ‘지명할당’ 조처했다고 밝혔다. 시카고/AP 연합뉴스
케이비오(KBO)리그 4년 연속 홈런왕 박병호(31·미네소타 트윈스)가 빅리그 2번째 시즌을 앞두고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일 2017 시즌 준비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박병호는 “팀 내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죽기 살기로 노력하겠다”며 우려 섞인 각오를 내놓은 바 있는데 그의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미네소타 구단은 4일(한국시각) 오른손 불펜 투수 맷 벨라일을 영입하면서 박병호를 지명할당(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조처했다고 밝혔다. 구단이 박병호를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는 올 시즌 미네소타가 팀 전력 구상에서 지명타자 1순위 자리에 박병호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다시 시장에 나온 박병호는 ‘운명의 일주일’ 앞에 서게 됐다. 지명할당 조처에 따라 일주일간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의 클레임(요청)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기간 내 클레임이 없으면 박병호는 마이너리그로 계약이 넘어가거나 최악의 경우엔 방출될 수도 있다.
박병호의 팀 내 입지가 좁아진 이유는 그의 빅리그 첫 시즌 성적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네소타는 ‘한국산 거포’ 박병호에 큰 기대를 걸고 포스팅 금액 1285만달러(약 147억5000만원)를 넥센에 지급한 뒤, 박병호와 4년 1200만달러(보너스 제외)에 계약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지난해 62경기에 나와 타율 0.191, 12홈런, 24타점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엔 낮은 타율에도 탁월한 장타력으로 존재감을 보였지만 5월 중순부터 150㎞를 넘는 빠른 공에 대처하지 못하고 고전했다. 트리플A에서도 타율 0.224로 부진했고 8월 오른손 중지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뒤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지난해 9월 귀국한 그는 “속구 구속이 우리나라 투수들보다 빨라서 타이밍이 맞지 않아 삼진이 많았다”고 말했다.
미네소타는 현재 박병호보다 젊은 케니스 바르가스(27)를 지명타자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바르가스는 지난해 47경기에 나와 타율 0.230, 10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박병호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구단은 바르가스에게 먼저 기회를 줄 계획이다.
데릭 팰비 미네소타 야구부문 사장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박병호가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을 알고 있다. 리그를 옮기면 적응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가 오프시즌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도 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팰비 사장은 박병호를 냉정한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박병호 영입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테리 라이언 사장이 팀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직후 부임했기 때문이다. 박병호 영입에 대한 책임이 사실상 팰비 사장에게는 없다.
현지 언론들은 박병호에게 아직 3년이라는 보장 계약이 남아 있어 다른 구단들이 선뜻 영입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병호를 영입하려면 3년 보장 연봉 875만달러(약 100억원)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 <시비에스(CBS) 스포츠>는 5일 “박병호의 삼진 비율이 30.1%이고 콘택트 능력에도 문제가 있다”며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31살 선수에게 875만달러를 지급할 구단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네소타 지역지인 <파이어니어 프레스> 역시 “박병호가 미네소타에서 2년차를 맞기도 전에 그의 시대가 막을 내릴 수도 있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외신의 평가대로라면 현실적으로 박병호에게 남은 카드는 하나다. 스프링캠프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 뒤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재진입하는 것. 가시밭길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박병호는 마이너리그에서 올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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