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신한은행 김연주가 1일 낮 인천 중구 도원체육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인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5년 12월 초 훈련에 매진하고 있던 김연주(31·신한은행)는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발뒤꿈치를 강하게 밟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될 때 찾아오는 현상이었다. 김연주는 “그 자리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서른을 앞둔 시점이었다. 안 그래도 그는 아킬레스건 주변에 5년째 염증을 달고 뛰고 있던 터였다.
병원의 진단은 예감대로였다. 수술과 재활을 포함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필요했다. 김연주는 그대로 시즌 아웃됐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농구를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주위의 강한 만류에 “1년만 더 해보자”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독한 각오로 무장한 채 시작한 2016~2017 시즌. 김연주는 완전히 달라졌다. 55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3점슛 부문 3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만난 김연주는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면서 쉴 새 없이 림을 향해 공을 던지며 궤적을 점검하고 있었다.
김연주는 올 시즌 전 부문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우선 출전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전 경기에 출장해 평균 28분52초를 뛰면서 7.48점을 올리고 있다. 3점슛 성공률(0.348)도 리그 4위다. 지난 시즌에 부상으로 10경기밖에 뛰지 못했던 한을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자농구 신한은행 김연주가 1일 낮 인천 중구 도원체육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잡으면서 활짝 웃고 있다. 인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러나 팀은 최근 4연패에 빠졌다. 신한은행은 부천 케이이비(KEB)하나은행, 청주 국민은행과 함께 공동 4위(11승18패)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티켓의 향배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신한은행이 김연주의 외곽포에 거는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일여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선발됐고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2순위로 신한은행에 지명됐을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김연주는 정작 소속팀에서는 오랜 시간 식스맨(6번째 선수)으로 뛰어야 했다. 자신과 포지션이 겹치는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출전 시간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3점슛을 던질 때 자주 멈칫하게 됐다”는 그는 “하루 잘 들어가도 ‘다음날도 잘 넣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습관 때문에 자주 위축되곤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림을 향해 과거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자신감 있게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의무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생각하고 득점에 실패해도 부지런히 움직여 찬스를 만드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득점 성공률도 높아졌다. 신기성 신한은행 감독은 김연주의 외곽을 살리기 위해 그를 위한 3점슛 공격 패턴도 별도로 만들었다.
부상을 딛고 올 시즌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그는 자신에게 기적처럼 다시 찾아온 기회에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고 했다. “슈터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린 3점슛으로 관중과 한 몸이 될 때 느끼는 중독성으로 여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그는 팬들에게는 “외곽에서 시원시원하게 3점슛을 잘 넣던 선수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걸어온 20대를 찬찬히 돌아보더니 “행복한 때도 많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너무 힘들었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김연주는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면 제주도로 내려가 잠시 해녀로 살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아무런 장비 없이 홀몸으로 거친 바닷속으로 들어가 생계를 꾸리는 해녀들이 오랜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은퇴 뒤엔 마음껏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실행하며 한동안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농구 선수로서 한 치의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가 지금 코트에서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이유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