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 이승훈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사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날 1만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 3관왕에 올랐다. 삿포로/연합뉴스
아시안게임까지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지난 2월 초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맏형 이승훈(29·대한항공)은 팀추월 경기 도중 넘어지면서 오른쪽 정강이가 찢어져 8바늘을 꿰맸다. 부상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자신 때문에 후배들이 성적을 내지 못한 점이 더 괴로웠다. 이승훈이 망설임 없이 아시안게임 출전을 감행한 이유다.
부상 여파로 훈련량을 줄였지만 아시아에선 이승훈에 맞설 적수가 없었다. 이승훈은 지난 20일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아시아 최고기록(6분24초32)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22일 남자 최장거리 종목인 1만m에서도 이승훈은 13분18초56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초반에 체력을 안배하며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운영한 이승훈은 후반부터 속력을 끌어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4400m부터 모든 랩타임(400m 한 바퀴 기록)을 31초대에 끊었다. 9200m~9600m 구간에서는 31초12를 기록했고, 마지막 한 바퀴는 30초54에 통과했다. 경쟁자인 쓰치야 료스케(일본)는 막판 체력 난조로 2위(13분23초74)를 기록했다.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1만m 출전 여부는 이승훈의 고민 중 하나였다. 1만m 이후 팀추월이 이어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팀추월은 이승훈이 아시안게임에 나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자칫 무리하다 2종목 모두 그르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훈은 5000m 우승 뒤 1만m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해 출전을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보란 듯이 1만m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그는 “태극기가 일장기 사이에서 올라가 기분이 좋았다”며 “경기를 소화할수록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며 이어질 팀추월에 대한 강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2시간 반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이승훈은 후배들과 다시 빙판에 올랐다. 이승훈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이승훈, 주형준(26·동두천시청), 김민석(18·평촌고)으로 이뤄진 남자 팀추월 대표팀은 지난 세계선수권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첫 바퀴를 31초96에 끊은 뒤 2바퀴를 27초69에 주파하며 속력을 높였다.
이승훈은 4바퀴 통과 지점을 앞두고 선두로 치고 나가며 레이스를 이끌더니 결국 3분44초32라는 아시아신기록으로 팀추월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훈으로선 5000m, 1만m에 이어 대회 3관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승훈은 2011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도 5000m와 1만m,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하며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이승훈은 아직 주종목을 치르지 않았다. 그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매스스타트에 출전할 계획인데 그는 이 종목 세계 1위다. 매스스타트에서마저 우승할 경우 우리나라 선수로는 겨울아시안게임 사상 첫 4관왕이라는 위업까지 달성하게 된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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