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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주인공처럼…수줍은 소녀는 날아올랐다

등록 2017-03-01 18:11수정 2017-03-01 20:54

〔통통스타〕 삿포로 피겨여왕 최다빈
조명 못받다가 최고 연기로 갈채
쇼트 배경음악 가사 내용과 닮아
은반 위 당당한 모습과 달리 조용
“연아 키드란 말은 과분”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따며 샛별로 떠오른 최다빈이 1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피곤도 잊은 채 다가오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해 각오 등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따며 샛별로 떠오른 최다빈이 1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피곤도 잊은 채 다가오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해 각오 등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7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한 영화 <라라랜드>는 최다빈(17·수리고)에게 ‘대타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게 해준 작품이기도 했다. 최다빈은 2016~2017 시즌 시니어 무대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지난 16일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 대회를 2주 앞두고 배경음악을 바꿨다. 그가 선택한 곡은 <라라랜드>의 오에스티(OST) ‘섬원 인 더 크라우드’(Someone in the crowd). 대회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하면 위험한 도전이었다.

최다빈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4대륙 대회 여자 싱글에서 개인 최고점(182.41점)을 갈아치우며 5위에 오르더니 일주일 뒤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에선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까지 거머쥐었다. 1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최다빈은 “처음 듣고 음악이 너무 좋았다”며 “반복해서 듣다 보니 영화 줄거리와 노래 가사도 마음에 와닿아 쇼트프로그램을 잘 구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귀국한 최다빈은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이날도 빙판 위에 올라 훈련에 매진했다. “피로가 남아 있다”고 했지만 훈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달 열릴 세계선수권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선수권에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 티켓이 걸려 있다.

본래 이 대회는 최다빈의 동갑내기 친구 김나현(과천고)이 출전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김나현이 발목 부상으로 최다빈에게 출전을 양보했다. 이뿐만 아니다. 삿포로 대회도 박소연(단국대)이 발목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최다빈에게 기회가 왔다. 최다빈은 양보해준 동료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대회에 임했고, 결국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한국 피겨 여자 싱글을 대표하는 김연아, 박소연의 그림자에 가려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하던 최다빈은 삿포로 이후 달라진 주변의 관심에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 은반 위에서 보여준 당당함과는 사뭇 달랐다. 최다빈은 “사람이 많은 곳을 되도록 피한다.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만원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아시아 최고의 연기를 펼친 선수가 내놓으리라 예상되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쇼트프로그램 배경음악의 가사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라고 묻자 이번에도 “그런가요?”라고 되묻고는 작은 미소만을 살며시 남겼다.

최다빈이 선택한 음악 ‘섬원 인 더 크라우드’는 파티 초대장을 받은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파티가 새로운 짝을 만날 수 있는 ‘캐스팅 오디션’이 될 수 있을 거란 주변의 독려에도 주인공은 망설인다. 노래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이 있을까’를 걱정했다. 그러다가도 ‘준비만 돼 있다면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마음이 흔들린다. 결과는 노래에 나와 있지 않다. 최다빈은 대신 이 노래를 배경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현실 속에서 가장 높이 날아올랐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최다빈이 10년 전인 2007년 1월, ‘김연아 장학금 전달식’에서 김연아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최다빈이 10년 전인 2007년 1월, ‘김연아 장학금 전달식’에서 김연아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다빈은 ‘피겨 퀸’ 김연아(27)를 동경했다. 김연아처럼 은반 위의 아름다운 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다섯살 때인 2005년 처음 빙판에 올랐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 이가 부러진 적도 있다. 그래도 다음날 아이스링크를 또 찾을 만큼 스케이트에 빠져들었다.

김연아의 간헐적인 지도를 받으며 ‘연아 키드’로 성장한 최다빈은 이번 겨울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명실상부 ‘포스트 김연아’로 거듭났다. 하지만 최다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제게 너무 과분해요. 전 아무리 노력해도 연아 선배가 될 수 없어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보여드릴 뿐이에요.”

김연아 이후 수많은 피겨 꿈나무들이 피고 졌지만 최다빈은 자기만의 빛을 냈다. “어릴 때 과천 빙상장에서 연아 선배와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연아 선배는 너무나 높은 산이에요.” 김연아는 최다빈이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응원문자를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 최다빈의 시선은 평창을 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이달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나홀로 출전하는 최다빈이 세계선수권에서 10위 안에 든다면 한국은 평창올림픽에 2명의 선수를 내보낼 수 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던 최다빈이 세계선수권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인 이유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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