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 프로농구 통합우승의 주인공인 김승기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축포가 터지고 꽃가루가 휘날렸다. 순간 힘겨웠던 지난 20년의 세월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두 뺨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2016~2017 프로농구 통합우승의 주인공인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 그의 영광 뒤에 숨겨진, 남모르게 아파했던 사연을 10일 들어봤다.
■ ‘터보’ 장착한 최고 가드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과는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다. 특히 청소년대표, 대학대표, 국가대표 선발 때마다 유난히 국제대회에 강한 김 감독과 국내 코트에서 돋보였던 이 감독을 놓고 강화위원들은 ‘국제용’, ‘국내용’을 거론하며 맞섰다.
김 감독은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는 저돌적 스타일로 ‘터보 가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현대·기아의 스카우트 공세 속에 삼성에 입단했다. 199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선 한국이 중국을 꺾고 28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한때 강동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사우디에 다녀온 뒤 무릎이 고장났다. “너무 아파 걷기도 힘들었죠. 양쪽 무릎엔 뼈가 삐져나오기 시작했고요.” 화려했던 선수 생활은 그때부터 내리막이었다. 하필 프로가 막 출범했던 시기였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죠.”
그렇게 9년을 더 뛰었다. 서울 삼성에서 원주 티지(TG)삼보로, 다시 울산 모비스로 떠돌이 신세가 됐다. 2001~2002 시즌엔 54경기에 모두 출전해 풀타임에 가까운 경기당 평균 34분45초를 뛰며 10득점, 4.7도움주기, 2.7튄공잡기를 해냈다. 그해 ‘수비 5걸상’을 받을 정도로 수비는 더 악착같았다.
■ 눈물 뒤에 숨겨진 사연 김 감독은 정상에 오른 순간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하염없이 추락하는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까 생각하니 서러움이 복받치더라고요.” 아내에게도 미안함을 전했다. 잘나가던 ‘터보 가드’는 1998년 결혼을 앞두고 추락했다. “1997~98 시즌을 멋지게 장식하고, 호텔에서 근사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주위에 많이 알리지도 않고 조촐하게 치렀죠.” 그해 소속팀 서울 삼성은 10개 팀 중 9위에 머물렀고, 그는 시즌 뒤 후배 양경민과 함께 원주 티지삼보로 트레이드됐다.
2016~2017 프로농구 통합우승의 주인공인 김승기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02~2003 시즌 프로에서 처음 우승을 맛봤다. 그러나 백업 가드였다. 시즌이 끝난 뒤 티지삼보는 그를 버렸다(울산 모비스 정훈과 트레이드). 2005년엔 ‘코트의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모비스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전자랜드의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계약 마감 시한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없던 일’이 됐다가 극적으로 친정팀 원주 동부로 가게 됐다. 2007~2008 시즌에는 코치로 동부의 우승과 함께했다. 그러나 코치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프로농구 최초로 선수, 코치, 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주역인 건 처음이었다. “초·중·고, 대학까지 밥 먹듯 우승했는데 프로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뒤 이렇게 정상에 오르는 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 전창진 전 감독과의 인연 중앙대 졸업 뒤 삼성에 입단한 것도, ‘코트의 미아’가 될 뻔했다가 동부로 이적한 것도, 2006년 5월 동부에서 처음 코치를 시작한 것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전창진 전 감독이었다. 용산중·고 선후배 사이지만 8년 차이가 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다. 전 전 감독은 강력한 리더십과 탁월한 용병술로 프로농구 챔피언에 세번이나 올랐다. 전 전 감독이 2009년 부산 케이티(kt)로 부임할 때도, 2015년 인삼공사 감독으로 옮길 때도 그는 코치로 항상 곁에 있었다. 김 감독은 “전창진 감독님께 배운 게 참 많다. 그분이 계셨기에 제게 이런 영광이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2015년 7월, 전 전 감독이 불법 스포츠도박 의혹으로 수사를 받자 그는 감독대행에 이어 지난해 1월 정식 감독이 됐다. 그리고 ‘모래알’이던 팀에 ‘톱니바퀴 조직력’이라는 끈끈한 터보 엔진을 장착했다. 2년 연속 ‘봄 농구’ 진출에 실패한 팀을 지난해 4강으로 이끈 데 이어 올해는 정상에 올려놓았다. ‘김승기표 농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시즌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 김승기 감독은?
1972년 2월26일(만 45살) 서울생
아내 김지혜(44)씨와 두 아들(진모·동현)
대방초-용산중-용산고-중앙대
삼성전자-나래-TG삼보-울산 모비스
원주 동부 코치-부산 KT 수석코치-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2016~2017 시즌 감독상
2016~2017 프로농구 통합우승의 주인공인 김승기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