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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발이라 달리지 못한 소년은 이제 훌쩍 난다

등록 2017-07-05 08:08수정 2017-07-05 08:22

[통통스타] 남자 높이뛰기 세계대회 출전 우상혁
짝발·작은 키 등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의심보다 도전으로 국내 정상으로 성장
“부상 없다면 조만간 한국신 가능” 자신
우상혁(왼쪽)이 지난달 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12년째 지도해주고 있는 윤종형 코치와 함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우상혁(왼쪽)이 지난달 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12년째 지도해주고 있는 윤종형 코치와 함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가 육상에서 세계 정상에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높이뛰기 종목이라면 신체적 불리함은 더욱 커 보인다. 1997년 이진택(46·은퇴)의 한국기록(2m34)이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남자 높이뛰기에서 최근 새 기대주가 나타났다. 지난달 2m30을 뛰어넘어 육상(마라톤·경보 제외)에서 처음으로 8월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획득한 우상혁(21·서천군청)이다. 그를 최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우상혁은 “올해 목표로 했던 세계선수권에 나가게 돼서 기쁘다. 시즌 초반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이 대회 때는 좀더 여유를 갖고 출전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성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12년째 우상혁을 지도하고 있는 윤종형(60) 코치는 “당시 주변 여건이 안 좋아 2m30을 넘는 것은 힘들다고 봤는데 기어코 해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우상혁은 당시 스파링 파트너가 없었고, 관중들의 응원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경쟁자가 모두 탈락해 2m16, 2m25, 2m30 등 세 차례 도전 때는 우상혁 혼자 출전했다. 경기 도중 트랙경기를 위해 중단되는 등 리듬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높이뛰기는 일정 수준에 올라선 이후에는 심리적 영향이 크다고 한다. 우상혁은 “생각이 많아지면 좋은 기록이 나오기 어렵다. 주변에서 2m30을 얘기해도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상혁은 본인에 대해 “생각없이 들이민다. 안 될 거라는 의심보다는 일단 부닥쳐본다”고 평가했다. 높이뛰기 선수가 된 것도 그의 이런 성향 때문에 가능했다.

우상혁이 지난달 4일 경북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0을 넘어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얻은 뒤 활짝 웃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제공
우상혁이 지난달 4일 경북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0을 넘어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얻은 뒤 활짝 웃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제공
우상혁이 높이뛰기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달리기가 하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육상부가 있는 학교를 찾았다. ‘짝발’인 그에게 사실 무리한 도전이었다. 8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오른발(270㎜)이 왼발(275㎜)보다 작다. 당시 육상부를 지도했던 윤종형 코치는 높이뛰기를 추천했다. 윤 코치는 “달리기는 무리였지만 움직임이 빠르고 유연해, 높이뛰기는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도약을 위한 디딤발이 왼발인 점은 다행이었다.

이때 맺어진 우상혁과 윤종형 코치의 인연은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상혁이 중학교 진학 때 윤 코치와 함께 같은 학교로 옮겼고, 고등학교 때에는 당시 충남 서천군청 감독을 맡게 된 윤 코치에게 위탁교육을 받는다는 조건을 관철시켰다.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윤 코치도 진천선수촌에 들어왔다.

키가 작았다는 점도 우상혁이 가진 또 다른 약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58㎝에 불과했다. 대회 결선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 키 큰 선수들에게 역전당하는 일이 많았다. 엄마·아빠 모두 키가 크지 않다는 점도 늘 불안요인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주위에서 ‘계속 높이뛰기선수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윤 코치는 “고등학교 때까지 근력운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자칫 1㎝라도 덜 자라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우상혁은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이 끝난 뒤에야 상체 훈련에 집중해 단기간에 8㎏ 정도 몸무게를 늘렸다.

우상혁은 “처음에는 몸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차츰 불필요한 근육이 빠지면서 더욱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윤 코치는 “상체가 좋으면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설명이다. 어른이 된 우상혁의 키는 188㎝로 높이뛰기 선수치고는 크지 않다. 그러나 최근 국제 무대에서 180㎝ 후반대 선수들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우상혁은 인터뷰 도중 ‘휘말리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주변의 높은 기대치나 관중들의 반응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높이뛰기는 연습 때나 실전 때나 같은 거리를 뛰고 같은 자세로 도약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이나 주변 여건에 따라 선수의 리듬이나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상혁은 “언젠가는 한국신도 넘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에 휘말리지 않고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려 한다.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큰 부상을 당하면서 자칫 높이뛰기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부상 없이 운동할 수 있다면 1~2년 뒤에는 한국신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진천/글·사진 이찬영 기자 lcy100@hani.co.kr

우상혁이 지난달 4일 경북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0을 넘어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제공
우상혁이 지난달 4일 경북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0을 넘어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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