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이 지난해 2월 2017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 크 로스컨트리스키 여자 15㎞ 매스스타트에서 1위 자리 를 빼앗기며 결승점을 통과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삿포로/연합뉴스
이채원(37·평창군청)은 국내 크로스컨트리의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키 154㎝, 50㎏을 넘지 않는 몸무게, 올해 37살이 됐는데도 20년 넘게 국내 최고 선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크로스컨트리는 국내에선 낯설지만, 북유럽처럼 눈이 흔한 곳에선 생활 스포츠에 가까운 종목이다. 스키를 탄 채 눈이 쌓인 산악 지형을 최대 50㎞(여자부는 최대 30㎞) 걷고 뛰는 일종의 ‘설원 마라톤’이다.
강원도 평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이채원에게도 눈은 일상이었다. 중학교 시절, 교내 스키부에서 크로스컨트리를 우연히 접한 그는 이듬해 전국겨울체육대회(겨울체전)에서 첫 메달을 따냈다. 이후 겨울체전에서 따낸 금메달만 무려 71개에 이른다. 지난 14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에서 끝난 2018 겨울체전에서도 금메달 4개(프리 5㎞, 클래식 5㎞, 계주 15㎞, 복합 부문)를 얻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20여일 앞두고 국내에서 최종 점검을 무사히 마쳤지만, 이채원으로선 올림픽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앞서 이채원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 선수들 사이에서 정상급 기량을 뽐내왔다. 지난 2011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안게임에선 10㎞ 프리스타일에서 금메달을 따던 순간은 감격적이었다. 결승선을 넘자마자 눈 위에 쓰러져 눈물을 펑펑 쏟았던 그는 경기 뒤 “상상만 했던 금메달을 현실에서 땄다”며 기뻐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도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추가했다. 최근 평창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극동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북유럽과 북미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에선 우승권과 거리가 멀다. 이채원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부터 2014년 소치 대회까지 4회 연속 겨울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소치 대회 30㎞ 프리스타일에서 36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다. 유스티나 코발치크(폴란드), 엘리자베스 스티븐(미국)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는 최종 기록에서 2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는 이번 겨울체전에서 금메달 4개를 따낸 뒤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주까지 심적인 부담이 크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씩 마음이 풀리고 몸 상태도 올라오는 중”이라며 “이제는 (올림픽과 같은) 세계대회에서도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개인 기량 면에서는 오히려 실력이 만개하고 있다. 지난해 평창의 경기장 상태를 점검하는 테스트 이벤트의 하나로 열린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인 12위에 올랐다.
그는 고향인 평창에서 생애 다섯번째이자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이 될 올림픽을 맞게 됐다. 그는 평창올림픽의 의미에 대해 “마지막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꿈이 한국 선수로는 올림픽 역대 최고인 20위권 진입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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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이 지난해 2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여자스프린트 예 선에서 역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