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역사상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알파인 스키 대표 알빈 타히리(29).
“평창겨울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게 된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민족, 피부색, 성별, 국경 등 모든 경계를 넘어 평화를 말해야 합니다.”
코소보 역사상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알파인스키 대표 알빈 타히리(29)는 16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겨울올림픽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타히리는 한때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된 데 “전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소보는 1998년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에게 대규모 ‘인종청소’를 자행해 나라 전체에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78만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했던 곳이다. 20년간의 후유증으로 이어진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코소보에서 첫 겨울올림픽 대표 선수가 된 만큼 타히리에게 평창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는 23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 출전이 내게는 많은 것을 뜻한다”며 “개인적으로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뤘고, 전쟁과 죽음, 난민, 독재 등 힘겨운 역사를 지닌 코소보가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겨울올림픽에 처음 출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고 했다. 코소보는 201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했다. 2년 뒤인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첫 여름올림픽 출전과 동시에 유도에서 첫 금메달까지 딴 적이 있다. 당시 리우에선 여자유도 52㎏급 마일린다 켈멘디(당시 세계 1위)가 이탈리아의 오데테 주프리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겨울올림픽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소보 역사상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알파인 스키 대표 알빈 타히리(29)가 연습을 하고 있다. 코소보 올림픽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코소보인 부모를 둔 타히리는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가 태어난 1989년은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빼앗아 ‘코소보 내전’의 방아쇠를 당겼던 해다. 그가 ‘살아남은 자’에게 전해들은 전쟁은 참혹한 것이었다. 타히리는 “전쟁 기간 내내 아버지는 친척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발을 굴러야 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친척들은 지금도 그때 끔찍했던 기억을 얘기한다”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 뒤에 숨겨진 고통을 말해야 한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그는 다음달 열리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코소보 첫 겨울올림픽의 유일한 대표선수로 출전한다. 타히리로서는 슬로베니아에서 자란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해 스키와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독립한 2008년 아버지의 조국인 코소보 스키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마라톤 선수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정신과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다고 한다. 7살 때 스키를 시작해 한때 슬로베니아 스키 대표 선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코소보 알파인스키 대표 선수가 나 하나뿐이어서 반드시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국제스키연맹(FIS) 점수를 쌓기 위해 “매일매일 다른 대회장에 있었다”고 말할 만큼 엄청난 양의 대회를 소화했고, 결국 자력으로 평창행 티켓을 따냈다. 시즌이 끝났을 때 완전히 방전 상태가 됐다. 그러나 그는 “코소보가 겨울올림픽의 첫 역사를 만들고, 내가 그 첫걸음을 뗐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내 가족과 코소보 사람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직 치과의사이기도 한 그는 “특히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통해 평화를 말해야 한다”며 “우리가 결국 하나로 뭉쳐야 하는 ‘같은 인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히리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처음 방문하게 되는 한국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한국 방문이 최고의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