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안드레아스 벨링거가 10일 평창겨울올림픽 스키점프 남자 개인 노멀힐 결승 라운드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평창/EPA 연합뉴스
“나는 나이를 먹고 있고 젊은 선수들의 실력은 늘고 있다. 메달을 따기 위해 내가 이곳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1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에서 열린 여자 7.5㎞+7.5㎞ 스키애슬론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38살의 ‘크로스컨트리 여제’ 마리트 비에르옌(노르웨이)은 이렇게 말했다. 사상 첫 크로스컨트리 종목 3연패 도전에 실패했음에도 비에르옌은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에르옌을 꺾고 정상에 오른 스웨덴의 샬로테 칼라(31)는 “비에르옌은 환상적인 선수다. 그녀를 앞질러 정말 기쁘다”고 말하며 자신의 우상을 뛰어넘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은 한 시대를 풍미한 1인자가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운 대회이자 새로운 1인자의 시대가 열린 대회로 기억될 만하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대회 첫 메달이 결정된 크로스컨트리부터 시작해 각 종목별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려는 챔피언들과 이에 맞서 자신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신흥 강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같은 날 열린 스키점프 남자 개인 노멀힐 대회에서는 2014년 소치 대회 2관왕에 빛나는 폴란드의 카밀 스토흐(31)가 20대 젊은 선수들에 밀려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정상에 선 것은 113.5m를 날아간 독일의 신예 안드레아스 벨링거(23)였다. 스토흐는 두 차례나 ‘올해의 폴란드 스포츠 선수’상을 받은 폴란드의 국민영웅이다. 평창을 방문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이날 스토흐의 경기를 직접 참관했지만 은메달과 동메달도 노르웨이의 젊은 선수 요한 안드레 포르팡(23)과 로베르트 요한손(28)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제’ 마리트 비에르옌을 꺾고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스웨덴 샬로테 칼라. 평창/연합뉴스
2006년 토리노대회부터 2014년 소치대회까지 금메달 4개를 목에 건 네덜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 여왕 이레인 뷔스트(32)는 자신의 주종목인 여자 3000m에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같은 나라의 카를레인 아흐테레이크터(28)에게 0.08초 차이로 금메달을 내줬다. 아흐테레이크터는 “믿을 수 없다. 항상 금메달을 꿈꿔왔지만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 바이애슬론 7.5㎞에서는 이 종목 3연패에 도전했던 슬로바키아의 아나스타시야 쿠즈미나(34)를 제치고 독일의 라우라 달마이어(25)가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시대가 개막됐음을 알렸다. 11일 열린 남자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는 18살의 레드먼드 제라드(미국)가 화려하고 완벽한 점프 기술을 선보이며 캐나다의 맥스 패럿, 마크 맥모리스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금메달을 목에 건 네덜란드의 카를레인 아흐테레이크터. 강릉/로이터 연합뉴스
평창에 부는 세대교체 바람은 남은 경기들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올림픽의 꽃인 알파인 스키에서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 ‘스키 여제’ 린지 본(34·미국)과 ‘차세대 여왕’ 미케일라 시프린(23·미국)의 대결이 펼쳐지고,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는 라트비아의 스켈레톤 영웅이자 ‘무관의 제왕’ 마르틴스 두쿠르스(34)와 차세대 제왕을 노리는 윤성빈(24) 간 금메달 경쟁이 펼쳐진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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