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와 공부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마다 다르다.
1930년 9월21일치 <동아일보> 5면의 ‘대회날을 고대하는 각 여학교 정구선수 맘 졸이는 그들의 요즈음’이라는 기사를 보면, “원족(소풍) 가서 산에 올라가는데 우리는 떡 먹기로 올라갔다” “나는 력사를 좋아하지만 룡순이는 산술이랍니다” “공부하면 학과 성적도 좋아진다” 등등의 말이 나온다. 그 당시에는 선수라도 학업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을 보여준다.
1950년대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던 김영기 전 케이비엘(KBL) 총재는 “고등학교 들어갈 때 우등생 가운데 키 큰 놈이 뽑혔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수업에 빠질 수 없었다. 졸업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또 “공부는 기본으로 하면서 운동이나 웅변, 예술 분야 특기가 있는 학생이 대학에 갔다. 미국식 교육의 영향이 있었다”고 했다.
이런 풍경은 국제무대에서 스포츠 경쟁이 치열해지고, 남북 간 체제 대결이 격화되면서 달라진다. 결정적으로 정부가 1972년 운동선수에게 상급학교 진학 특혜를 주는 체육특기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보기 힘들어졌다. 이 시기 이후 학창 시절을 보낸 많은 이들한테 선수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격리된 특수 집단’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게 일반적이다.
2019년 1월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계기로 대중의 변혁 요구가 커지면서 한국 스포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민간기구인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최근 낸 1~4차 권고안은 근원적이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수업 정상화다. 선수의 수업 참여 의무화, 최저학력제 정착, 교과성적 대학입시 실질 반영 등을 명시했는데, 정부는 이를 실행해야 한다.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공부는 꼭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 운동 하나에만 올인했다가 프로의 좁은 문을 뚫지 못하는 게 대부분 선수들의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잡담을 하더라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하고, 관계를 형성하면서 소통의 경험과 소양을 쌓는 것은 시기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공부다. 앞으로 10~20년 뒤에는 운동선수의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질까. 김창금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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